南에는 '당근' 美에는 '채찍'..남북관계 전면 나선 김정은

김범수 2021. 9. 30. 18:5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北, 협상력 노린 '강온전략'
金 "美 8개월 넘도록 태도 안 변해"
직접 나서 바이든 대북 정책 비난
미·중갈등 속 사회주의 연대 조짐
"이중적 태도·적대시 정책 철회"
종전선언 제안 관련 변화도 없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단된 남북통신연락선을 10월 초엔 복원하겠다는 의사를 직접 밝혔다. 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로서 남북관계와 관련된 사안에 전면 등장해 의지를 피력했지만, 남북관계 회복 여부는 남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기존 북한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을 향해서는 새 행정부 출범 이후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 9월 말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종전선언’ 연설 이후 북한이 숨쉴틈 없는 대남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통신연락선 복원을 직접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한·미를 향해 이중잣대 철폐와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를 요구한 북한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한은 지난 7월 말 통신선 복원 이후 ‘강경’과 ‘온건’을 넘나드는 등 변화를 키워 왔지만, 이날 김 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대남 온건 행보에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한·미의 양보를 사실상 요구해 남북 및 북·미 대화가 당장 속도감을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북한의 잇따른 대남 메시지 발신에 말을 아끼고 있는 우리 정부는 이날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이날 정례 상임위를 열고 남북관계 등 최근 현안 등을 논의했다. 향후 우리 정부는 미국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며 대북 사안을 챙길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내달 남북통신연락선 복원할 것”…미국엔 강한 비난

30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 초부터 관계 악화로 단절시켰던 북남통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지난 7월 27일 통일부 연락대표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서울사무실에서 직통전화로 북한 측과 통화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동지께서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 2일 회의에서 역사적인 시정연설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발전을 위한 당면 투쟁방향에 대하여’를 하셨다”며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일단 10월 초부터 관계 악화로 단절시켰던 북남통신연락선들을 다시 복원”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통신선 복원의사를 말하면서도 “북남관계가 회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 나가는가 아니면 계속 지금과 같은 악화상태가 지속되는가 하는 것은 남조선(남한)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8월 10일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해 복원 며칠 만에 중단했던 통신연락선을 재가동하겠다는 입장을 최고지도자의 발언을 통해 개진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서도 목소리를 내놨다.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서는 대북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미 행정부의 출현 이후 지난 8개월간의 행적이 명백히 보여준 바와 같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그 표현 형태와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미국이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역대 미 행정부들이 추구해 온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미국에 대한 비방의 수위는 그동안 보여준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미국에 대한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비난으로도 해석될 소지가 있다. 북한은 지난 1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외무성 등 관리들을 앞세워 미국을 비판한 적은 있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측 이중잣대 철회부터” 조건 내걸며 남북, 북·미 주도권 노려

김 위원장이 직접 등장해 대남·대미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우리의 국회에 해당되는 최고인민회의에 김 위원장이 나서 직접 발언한 것은 2019년 4월 이후 처음이다. 거의 2년 6개월 만의 발언대 등판으로 볼 수 있다. 당초 불참 가능성도 전망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회의에 참석해 전반적인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한·미를 향한 발언에 그만큼 무게감이 실리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우리는 남조선을 도발할 목적도 이유도 없으며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고 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관련해서는 “불신과 대결의 불씨로 되고 있는 요인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종전을 선언한다 해도 적대적인 행위들이 계속될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 접촉을 원하는 듯한 김 위원장의 발언이 갖는 무게감과 달리, 북한은 9월에만 모두 3차례에 걸쳐 미사일 발사에 나섰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남북대화 재개 가능성 등 서로 다른 카드를 한꺼번에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남북 및 북·미 관계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통신연락선 복원 관련 발언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발언을 비롯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중한 접근에는 당초 남북관계 진전 1단계로 언급했던 ‘통신선 복원’을 김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지만, 이중 기준 철폐주장이나 미사일 발사 등의 상황도 이어져 섣부른 접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류에 따른 것이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이 3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기 전 주먹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성 김 특별대표는 협의 후 “미국은 북한에 적대 의도가 없다”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과 관련해 “한·미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성 김 미국 대북대표 “북한에 적대 의도 없어…모든 범위 논의 가능”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알려진 30일 성 김 미국 대북특별대표는 북한에 적대적인 의도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페어몬트 호텔에서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난 나리에서 “우리는 북한과 상호 및 지역 현안의 모든 범위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종전선언’에 대해 노 본부장과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대미 강경 목소리가 실린 점에 주목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이번 김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앞으로도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에 나설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 같다”며 “북한이 이처럼 한·미에 대해 대조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북·미관계 개선으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정 센터장은 “북한이 남한을 통한 미국과 통하는 전략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한·미와 한·중 간의 전략적 대북정책 공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수, 이도형 기자 sway@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