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논쟁을 하자!

한겨레 2021. 9. 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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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서복경|더가능연구소 대표

지난 29일, ‘탄소중립시민회의’(시민회의)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인식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시민회의’는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소중립위)가 시민들의 의견수렴을 위해 만든 기구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국제사회에 상향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제출하기로 약속을 해놓았는데, 탄소중립위는 그 책임을 맡고 있다.

탄소중립위가 지난 8월 내놓았던 3종의 시나리오나 시민회의 방식이 시민들의 의견을 확인하는 데 과연 적정한가, 시민회의 논의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은 그 자체로 논란거리지만 이 부분은 논외로 하자. 시민회의 참여자들에 대한 4차례 설문조사 결과는, 기후위기 대응 관련 우리나라 시민들의 혼란스러운 정보환경과 부족한 공론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여자 다수는 ‘탄소중립 달성 목표 시점을 2050년보다 앞당겨야 한다’고 답했지만, ‘석탄발전소 폐쇄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국제기구가 제시한 2030년, 2035년, 2040년이 아닌 2050년이 적정하다’는 답을 내놓았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공론 과정을 한달여 정도 거친 뒤에 ‘2040년 이전 폐쇄’를 지지하는 의견이 줄어들고, ‘2050년 이후 폐쇄’를 지지하는 의견은 늘어난 것이다. 처음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탄소 배출의 주범이라는 인식에 따라 당위적으로 답했던 것이, 발전소 폐쇄가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적 어려움에 대한 정보를 갖게 되면서 참여자 상당수가 현실론으로 돌아선 결과로 보인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발전소에 근무하던 사람들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고, 발전량의 공백을 채울 대체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하며, 전기요금 인상을 야기하는 등의 현실적 결과들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탄소중립의 과제는 당위가 아닌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여자들의 인식 변화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얼마나 시급한가’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숙의는, 일회성 이벤트로 가능한 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지금 우리를 포함한 세계가 탄소중립을 논하는 것은, 기술 등의 발전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생존의 문제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의의 출발은 시급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다. 각급 단위 학교, 읍면동·시군구·광역·전국 단위의 다양한 제도적 기구들, 온·오프라인 시민모임에서 지금부터 일상적인 정보 교환과 숙의가 이뤄져야 한다. 탄소중립을 향해 가는 방법은 이미 마련된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없던 경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중앙이나 광역 지방정부는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다양한 단위에서의 공론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이 갈등 없이 순탄할 수는 없다. 이미 오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겪어온 나라들도 단계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2019년 10월 만들어져 9개월 동안 활동했던 프랑스 기후시민의회는, 149개 권고안과 함께 헌법 제1조에 기후위기 대응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자는 개헌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프랑스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과 하원의 의견 불일치로 결국 지난 3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는 좌절되었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좌절되었다고 해서 프랑스가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탄소중립으로 향해 가는 길에도 다양한 굴곡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법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국가적 목표로 천명한 이상 길은 찾아져야 한다. 길을 찾으려면 더 많은 논쟁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며,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결정은 가능한 한 다수의 시민이 정보를 공유하고 숙의를 진행한 결과로 특정한 길에 대한 합의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당장 내년 대통령선거에 후보를 내는 정당들은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하고, 시민들은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그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선거로 누군가 당선된다고 해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선거 뒤에는 제도화된 공론장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합의된 길을 찾아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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