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상상의 정원

한겨레 2021. 9. 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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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도시에도 가을은 온다.

기획전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9월10일~11월28일)에서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의 시간성과 장소감을 재발견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소란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느릿한 산책을 즐기며 상상 속 정원을 소유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그의 '가든 카펫'에서 바닥의 자유를 경험하고 상상의 정원을 소유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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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김아연, ‘가든 카펫’, 상상의 정원, 덕수궁, 2021, 식물, 목재 등 복합재료, 900×1800×40㎝, 배정한 사진

[크리틱] 배정한|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감염된 도시에도 가을은 온다. 그 어느 시절보다 예리하고 투명한 가을볕을 뚫고 바싹 마른 바람이 분다. 하늘과 구름, 노을 사진 자랑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연일 북적인다. 모처럼 서울 도심에서 약속이 있다면 한두 시간 먼저 출발해 덕수궁에 들러보시길 권한다. 기획전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9월10일~11월28일)에서 정원을 매개로 덕수궁의 시간성과 장소감을 재발견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소란한 도시에서 잠시 벗어나 느릿한 산책을 즐기며 상상 속 정원을 소유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우연히 남는 시간이 생기면, 일상의 틀에서 탈주하고 싶은 충동이 일면, 나는 덕수궁을 택한다. 길을 걷다 몇 걸음만 옮기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궁궐 특유의 위압감과 고립감이 없다. 목적지를 강요하는 동선이 없어 몸이 자유를 누린다. 여느 공원이나 가로, 광장보다 앉을 곳이 많다. 한눈에 보이는 하늘 면적이 유달리 넓다. 바람, 곧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을 피부로 감각할 수 있다. 조선의 전각들, 유럽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전, 프랑스식 정원이 뒤섞인 이질과 혼종의 공간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흐른다.

일요일 아침, 덕수궁은 아무도 없는 공터다. 잠에서 채 깨어나지 않은 ‘상상의 정원’들을 제멋대로 서성이다 정관헌과 덕홍전 사이에 놓인 작은 정원에 멈춰 앉았다. 조경가 김아연(서울시립대 교수)의 ‘가든 카펫’(Garden Carpet)이다. 멀리서 보면 전통 원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사각형 연못, 방지(方池)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지면에서 세 계단 올라간 높이에 평평하게 펼쳐진 이국적인 카펫이다. 고종이 커피를 즐긴 서양식 건축물 정관헌과 명성황후 빈전 터에 지은 덕홍전의 경계에서 ‘가든 카펫’은 즐거운 혼성과 자유로운 상상을 허용한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시인 함민복의 ‘꽃’ 첫 구절을 떠올리며 카펫 위로 올라섰다. 김아연은 “구름 속에 놓인 혹은 꿈속의 정원”을 상상했다는데, 나는 연못 위를 걷는 느낌. 연못 밑 깊은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유목민이 건조하고 냉랭한 기후를 버티기 위해 들고 다녔던 카펫이 서구 상류층에 소개되면서 신분과 문화적 취향을 나타내는 기호품이 됩니다. 파라다이스 정원을 상징하는 화려한 문양과 상징체계를 가지게 됐고요.” 작가에 따르면, “카펫은 특색 없는 공간에 새로운 영역성과 장소성을 부여하는, 가장 간편한 ‘상상의 정원’이다”. ‘가든 카펫’은 1918년 <매일신보>에 실린 고종 일가의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됐다. 석조전 접객실에 깔린 서양 카펫의 패턴을 모사한 뒤 전체 문양의 구조는 유지하면서 개별 문양은 오얏꽃, 연꽃, 감꽃, 작약, 구절초, 복수초로 바꿨다. 목재 카펫을 둘러싼 화단에는 직물의 실을 연상케 하는 몽환적인 풀(쥐꼬리새 화이트클라우드)을 심었다. “전시가 끝나고 ‘가든 카펫’이 사라질 초겨울까지 풀과 꽃은 피고 지고, 자라고 사그라지고, 느리게 색이 바래며 ‘식물적 시간성’을 보여줄 겁니다.” 카펫의 식물 문양과 실물의 풀은 김아연이 지향해온 ‘생태학적 상상력’의 구현이기도 하다.

김아연은 덕수궁 ‘가든 카펫’뿐 아니라 2021 베네치아(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설치 작업인 빗자루로 만든 카펫 ‘블랙 메도’(Black Meadow) 등 일련의 바닥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그는 “바닥은 낮게 깔리는 것, 내려다봐야 하는 것, 수평적인 것, 그리고 우리가 하찮게 여겨온 것”이지만 “손이 아닌 발의 영역에 속한 것에 대한 반항적 끌림이 풍경의 바닥을 향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의 ‘가든 카펫’에서 바닥의 자유를 경험하고 상상의 정원을 소유해보시길.

김아연, ‘가든 카펫’, 2021, 덕수궁 정관헌과 덕홍전 사이, 배정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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