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외교도, 포퓰리즘도..결국 정신건강이 문제다

2021. 9. 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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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전문의가 본 정치 지도자의 정신건강

◆ 매경 포커스 ◆

대선 정국이 후보 검증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선 후보 중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 내세우는 정책에 대한 검증 못지않게 인물 검증이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는 정치인보다는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달변은 아니나 미래를 내다보는 후보가 훌륭한 리더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로서의 결함은 권력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선거에 앞서 면밀한 인물 검증이 중요한 이유다.

우선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과 미래를 내다보고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드러난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감각이고, 그것의 논리적 관계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고라면, 보이는 것 이면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어디서 유래됐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꿰뚫어 보는 능력은 직관이다. 직관적 능력이 열등한 경우는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문제의 본질 또는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릴 수 있어 지도자로는 적합하지 않다.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나라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외국에 빌붙어 눈앞의 이익과 왕권 유지에만 급급하다 결국 을사조약으로 통치권을 일본에 넘긴 고종이 통찰력이 부족하고 무능한 지도자의 대표적인 예다.

대선 후보라면 가고자 하는 길이 궁극적으로 어떤 길인지, 정책의 효과뿐 아니라 부작용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유권자 역시 정치인이 제시한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는 일찍이 그의 저서 '노예의 길'에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집단주의'의 속성을 지니며 결국 개인이 집단의 도구로 전락하는 '노예의 길'로 이끈다고 경고했다. 개인이 더 높은 차원의 사회 또는 국가의 목적에 봉사하는 수단에 불과해지면서 개인적 삶과 행복은 무시된다는 말이다. 세계적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그의 저서 '아이온'에서 "공공복지나 평생 안전보장, 국가들 사이의 평화 같은 멋진 이름들 아래 악마가 숨어 있다고 누가 의심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악마는 이상주의 아래에 숨고 '이즘' 아래 숨는다"고 했다. 나치즘과 파시즘, 러시아혁명,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냉전시대를 겪은 융의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선을 앞둔 지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과 함께 그 의미를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대중의 감각적 요구에 영합하며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낙관적 미래를 약속하는 정치인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미래의 결과를 내다보지 못하는 무책임한 행동대장일 수 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기업을 국영화하면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정책을 폈으나 이권을 챙긴 일부 측근 핵심 세력만 부유해졌을 뿐 결국 국가 부채가 급증하면서 국민의 생계 유지가 곤란해질 정도로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였다. 부정적 결과가 불 보듯 뻔히 예상되는데도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아느냐며 설익은 정책을 무조건 실행부터 하자고 우기는 사람 또한 직관적 통찰력이 부족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대립하는 좌우를 아우르고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수치나 어설픈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직관적 통찰력이 요구된다.

옳고 그름을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가치판단' 능력 또한 지도자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다.

가치판단은 합리적 사고에 따른 판단일 수 있고 '공정한 관찰자'로서의 공감 능력에 바탕을 둔 평가일 수도 있다. '도덕감정론'을 쓴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공정한 관찰자'는 공감 여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면의 가상적 존재다. 대선 후보가 되려면 '선(善)'을 '선'으로, '악(惡)'을 '악'으로 판단하거나 느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현실 정치가 '선'만을 추구하지 못하고 '좀 더 바람직한 것'과 '덜 혐오스러운 것' 사이의 선택일지라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손익 계산은 빠르나 무엇이 소중하고 바람직한 것인지 가치판단 능력이 열등한 사람은 지도자로는 적합하지 않다.

말과 행동이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른 경우도 생각이 감각적 수준에 머물고 가치판단을 잘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눈치 보고 침묵을 지키거나 동조하는 사람 역시 지도자로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옳고 그름보다 이해관계를 좇고, 생각 없이 눈과 귀를 따르는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배라는 옛 성인의 말이 맞는다.

대선 후보라면 올바른 가치판단 능력과 더불어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진정성은 누가 뭐래도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자신을 실제 모습보다 부풀리지 않고 '진정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다. 말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서 개인의 권력욕과 명예욕이 앞서는 후보는 본래의 모습이 아닌 분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종교인도 아닌 정치인에게 순진하게 웬 진정성이냐고 할지 모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 시대와 달리 투명한 민주사회에서는 진정성이야말로 훌륭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거짓말을 일삼고 이를 삶의 방편으로 여기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치인은 진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당선되면 그럴듯하게 둘러대거나 안면을 바꾸면서 후보 때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실상을 제대로 보고 콤플렉스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

콤플렉스는 건드리면 과민하게 반응하는 인격의 한 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다. 콤플렉스의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나 그것의 존재를 모르고 있거나 사로잡힐 때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 콤플렉스를 깨닫는 것은 평생의 과제이자 정신 치료의 목표이기도 하다.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될 분이라면 과거사와 특정 국가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태도는 과거로부터 심리적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특정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 태도나 저자세를 보이는 행위 역시 콤플렉스의 발현일 가능성이 높다. 대망을 품은 지도자라면 이러한 콤플렉스에서 헤어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의 집단적 콤플렉스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선동하는 정치인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외교적 갈등만 부추길 뿐 나라를 대표해서 미래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로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성숙한 정치인이라면 '금수저·흙수저''주류·비주류'와 같은 출신 또는 사회적 배경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역시 자유로워야 한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난 점은 분명 높이 살 부분이나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며 정책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의 하나인 부를 추구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죄악시하거나 억제하는 것도 콤플렉스 영향일 수 있다. 아울러 지도자는 '내로남불'보다는 자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의 결점에 대해서는 관대한 인물이면 좋겠다. '내로남불'은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타인에게 투사하고 반응하며 일종의 콤플렉스(그림자)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선악에 대한 이분법적 생각과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 역시 콤플렉스의 표현이다.

리더는 자신의 단점을 알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적절한 사람을 곁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정치인은 없다.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어떤 참모를 곁에 두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직관적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구체적 사실 관계 파악과 실행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반대로 감각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본질에 대한 직관 능력은 떨어지나 아이디어만 주어지면 정해진 방식에 따라 성과로 이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직관적 리더에게는 감각적 참모가 필요하고 감각적 리더에게는 수족 같은 사람보다는 직관이 뛰어난 참모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서생의 문제 의식이 있는 사람은 상인의 감각을 지닌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감각을 동시에 지니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대선 주자로서 합리적 의사 소통 능력도 눈여겨봐야 할 덕목이다.

합리적 소통은 논리적 사고와 상대에 대한 공감 능력에 바탕을 둔다. 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쓴소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당 태종이 신하 위징의 역린을 건드리는 직언을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할 줄 알 때 합리적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기왕에 대선 주자라면 당선되었을 때 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품격이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정신의학적으로는 페르소나(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외적 인격)를 갖춘 사람이다. 카리스마가 없더라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 있어 믿음직스럽고, 솔직하면서도 드러나는 말과 행동에 기품이 묻어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현실적 감각을 지니되 '종교적 심성'을 지닌 정치인이면 더욱 좋겠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융은 종교적 심성 결여를 신경증의 원인으로 보기도 했다. 종교적 심성은 특정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종교적 심성을 지닌 사람은 무엇이 소중한 줄 알고, 현실적 삶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자기중심적인 데서 벗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지도자로서 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아픈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대중적 인기나 당선 가능성을 떠나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과 덕목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러한 덕목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 위한 조건들이기도 하다.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성숙해져 대중에 휩쓸리지 않고 눈높이가 높아질 때 유능하면서도 현명하고 덕망 있는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창윤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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