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 논란에 고개숙인 엔씨 "과금 상관없이 같은 재미 드리겠다"

천호성 2021. 9. 3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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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안쓰고도 재밌게 할 게임 만들겠다"
엔씨소프트, 신작 '리니지W' 쇼케이스서 공언
"유료 버프 없앨것" 임원 발언 뒤 주가 급등하기도
'현질 과다' 논란 속 게임사들 '유저 달래기' 나서
엔씨소프트가 다음달 4일 공개할 신작 MMORPG ‘리니지W’. 엔씨소프트 제공

“과금(유료 아이템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유저분들에게 동일한 재미를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성구 엔씨소프트 그룹장은 30일 온라인으로 열린 신작 ‘리니지더블유(W)’ 소개 행사(쇼케이스)에서 두 손을 모아 쥐며 이렇게 약속했다. 이날 엔씨소프트는 유저들 사이에서 ‘과금 유도’의 주 원인으로 꼽혀온 유료 아이템 폐지 방침을 밝히는 등 이용료 부담 완화책들을 대거 내놓았다. 최근 국산 온라인 게임의 과도한 결제 유도 논란으로 ‘3N(NC소프트, 넥슨, 넷마블)’ 등의 주가가 급락하고 이용자들이 이탈하자, 게임사들이 뒤늦게 유저 달래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날 리니지W 쇼케이스에서 관심을 끈 대목은 리니지 시리즈의 대표적인 유료 아이템으로 꼽히는 ‘아인하사드’의 폐지였다. 아인하사드는 이 회사의 역할수행게임(MMORPG)인 리니지 시리즈에서 게임 캐릭터의 성장과 게임머니 획득 속도를 빠르게 해주는 버프(강화) 아이템이었다. 월 5만5000원의 ‘유료템’이다. 사용 유무에 따라 게임머니 획득 속도가 4배로 벌어져 ‘사실상 강제로 사야한다’는 유저들의 원성이 높았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W에서 뿐 아니라 기존작인 리니지M, 리니지2M에서도 아인하사드 유료 아이템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리니지 시리즈에서 과금유도의 또 다른 ‘주범’으로 불렸던 문양, 각인 등의 시스템도 리니지W에서는 빼기로 했다. 이들 역시 캐릭터를 강하게 해주지만 게임 내에서 무료로 얻기가 힘든 데다 모아야 할 가짓수도 많아서 유저들의 불만이 컸다. 유료임에도 아이템이 무작위로 지급돼 도박성 논란을 일으켰던 소위 ‘뽑기’ 시스템도 일부 품목에만 한정해 도입하기로 했다.

이 그룹장은 쇼케이스에서 “(그동안 리니지 시리즈에서) 라이트 유저(무과금, 소액과금 고객)들이 게임 내에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혜택들을 누리지 못하는 역차별이 발생했던 게 사실”이라며 게임을 즐기기 위해 지불해야 할 금액이 과도했음을 인정했다. 이어 “단언컨대 서비스 종료 시점까지 아인하사드의 축복과 유사한 시스템 또는 어떠한 콘텐츠도 내놓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고 그는 강조했다.

쇼케이스를 본 게임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이날 유명 게임 유튜버의 동영상 채널 등에 모여 쇼케이스를 관람하던 리니지 유저들은 “우리 엔씨가 달라졌어요” 등의 문구를 채팅창에 올렸다. “아인하사드 등 월정액 시스템을 리니지W에 넣지 않겠다”는 이 그룹장의 발언이 나온 뒤 1분여 만에 엔씨소프트 주가는 57만7400원에서 59만2000원까지 2.5% 치솟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의 전향적 태도 배경에는 최근의 유저 이탈·주가 급락 등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사는 지난달 27일 게이머들의 기대 속에 신작 ‘블러드앤소울2(블소2)’를 출시했지만 ‘리니지 시리즈의 모든 과금 유도 시스템을 모아 놓았다’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출시 첫날 구글·애플 애플리케이션 마켓의 게임부문 일 매출 순위 3위권 진입에 실패하더니, 이달 27일에는 두 마켓에서 각각 6위, 35위로까지 밀렸다. 블소2 출시 직전인 지난달 25일 83만원 안팎이었던 엔씨소프트 주가도 최근 60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지나친 결제 유도에 대한 우려가 업계 전반으로 퍼지면서 넥슨 등 다른 대형 게임사들도 대안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박정 의원이 다수의 게임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넥슨은 게임 내 아이템 획득 확률을 유저들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넥슨 나우’ 시스템을 올해 4분기(10∼12월) 대표작인 ‘메이플 스토리’에 적용하기로 했다. 게임회사가 획득 확률을 고의로 낮춰 ‘현질’(현금 결제)을 부추긴다는 유저들의 불만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넷마블 역시 확률 공개 시스템을 연내 개편하기로 했다.

다만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엔씨소프트가 이날 내놓은 방안에도 일부 ‘뽑기’ 아이템은 남아있는 데다, 게임사들의 매출·주가가 개선되고 나면 유료 시스템들이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불신의 눈초리가 있다. 한 게임 유튜버는 이날 쇼케이스를 본 뒤 “(리니지 신작에서) 적어도 스킬 아이템과 장비는 무조건 (유료 상점이 아닌) 게임 내 몬스터를 잡아 획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중에 슬쩍 ‘유료 장비 뽑기’ 등을 도입하면 유저들이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나친 과금 유도 방지책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정 의원은 “현재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업계의 주요한 수익모델인데, 사행성 조장 등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감안해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모델 등을 고민해야한다”며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게임사들이)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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