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방문했던 로힝야 지도자, 괴한에 살해당해..무장단체 소행 추정 [시스루피플]

이윤정 기자 2021. 9. 30. 16: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로힝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29일 괴한들에 목숨을 잃은 로힝야족 인권 운동가 모히브 울라(50·사진)는 2년 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 당시 이미 살해 위협을 받고 있었다. 미얀마군에 의해 짓밟힌 로힝야족의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했지만 도리어 그는 로힝야족 무장단체의 표적이 된 것이다. 로힝야족 강경파와 무장단체는 난민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울라의 주장에 반대하며 로힝야족 인권 운동가들을 공격해왔다.

더데일리스타 등 방글라데시 매체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경찰은 목격자 증언을 인용해 4~5명의 괴한이 울라에게 다가와 총을 쐈다고 밝혔다. 아라칸로힝야평화인권협회(ARPSH)를 이끌던 울라는 이날 집무실 밖에서 다른 난민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공격을 받았다. 이후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시설로 옮겨졌지만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방글라데시 경찰은 범인을 추적 중이라며 범행 동기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로힝야족 인권 운동가들은 로힝야족 무장단체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나우킴 ARPSH 대변인은 “최근 몇 년 간 미얀마 보안 초소를 공격한 극단주의 단체 ARSA가 공격 배후에 있다”면서 ARSA가 지속적으로 울라에 살해 협박을 해왔다고 했다.

울라는 4년 전까지만 해도 미얀마 북부 라카인주에서 식물학자이자 교사로 활동했다. 하지만 2017년 미얀마군의 대학살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해 8월25일 새벽 군부는 ARSA의 경찰초소 습격을 트집 잡아 군사 작전하듯이 마을을 습격했다. 어린 아이에도 총구를 겨누는 미얀마군의 만행을 목격한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 꼬박 8일을 걸어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도착했다.

그러나 난민촌 또한 지옥이었다. 작은 오두막들로 이뤄진 난민촌에서 목숨을 겨우 건진 생존자들은 학살의 기억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울라는 난민들을 일일이 만나 미얀마군의 살인, 강간 등 만행을 기록하고 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들의 조사를 도왔다. 또 ARPSH를 설립해 방글라데시에 있는 110여만 로힝야 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미얀마군 대학살 2주년인 2019년엔 대규모 로힝야족 집회를 기획해 20만명이 참여했다. 그해 미국 백악관에 초청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로힝야족 문제 해결을 호소하기도 했다.

실질적인 민족 지도자로 인정받게 된 울라는 강경파에는 눈엣가시로 여겨졌다. 알자지라는 방글라데시 수용소에 있는 강경파 무슬림들은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왔다면서 무장한 남성들이 권력싸움을 벌이고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이슬람 규범을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마약 사업까지 벌이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거나 인질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울라의 죽음으로 로힝야족 무장단체의 활동이 더 거침없어 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남아시아 운동가 사드 함마디는 “울라는 수용소 내 폭력에 반대하고 인권과 난민 보호에 앞장선 로힝야족 지도자였다”면서 “그의 죽음은 지역사회에 오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나크시 간굴리 휴먼라이츠워치 남아시아지부장은 “울라의 죽음은 난민 캠프에서 자유를 외치고 폭력에 맞서는 이들에게 닥친 위험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방글라데시 당국은 즉시 살해 배후와 난민 캠프 내 로힝야족에 대한 공격을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