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쿵 했는데 10개월 통원치료"..'나이롱 환자' 이젠 안 통한다

이태규 기자 2021. 9. 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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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합동 자동차보험 개선방안 발표
경상 치료비 과실책임주의 도입
年 5,400억 과잉진료 감소 기대
치료 4주 초과땐 진단서 의무화
한방분야 등 지급기준도 구체화
차량 낙하물 피해는 정부가 지원
/서울경제 DB
[서울경제]

# 최근 자동차 사고가 난 김서경(가명) 씨는 보험 처리 과정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상대 차량의 차선 변경 과정에서 사고가 나 상대방 과실이 80%, 자신이 20%로 결론이 났다. 자신은 몸 상태가 괜찮아 병원을 찾지 않았는데 상대 차량 운전자가 13일 동안 입원을 하고 23회 통원 치료를 해 치료비 200만 원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치료비를 상대방이 아닌 전부 김 씨의 보험사가 지급한 것이다.

오는 2023년 1월 이후 발생하는 사고부터 이런 고(高)과실자의 치료비가 저(低)과실자에게 전가되는 불합리한 일이 사라진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국토교통부 등은 30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표준 약관을 개정해 2023년부터 ‘경상 환자 치료비 과실책임주의’를 도입한다. 지금은 자동차 사고 발생 시 과실 100 대 0인 사고를 제외하고 과실 정도와 무관하게 상대방 보험사에서 치료비를 전액 지급한다. 과실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아 과잉 진료를 유발했다. 이에 정부는 과실책임주의 원칙을 적용해 경상 환자(12~14등급)의 치료비(대인2) 중 본인 과실 부분은 본인 보험으로 처리하게 했다. 1~11등급의 중상 환자를 제외한 경상 환자에 한해 도입되며 치료비 보장이 어려울 수 있는 보행자(이륜차, 자전거 포함)는 적용이 제외된다. 정부는 이로 인해 연간 5,400억 원의 과잉 진료가 감소, 전 국민 자동차보험료가 2~3만 원 절감될 것으로 기대했다.

경상 환자 장기 치료 보험금 지급 시 진단서 제출도 의무화한다. 지금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진단서 등 입증 자료 제출 없이도 기간의 제한 없이 치료하고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 가령 범퍼 수리비 30만 원 정도의 가벼운 접촉 사고에도 관련자는 진단서 없이 10개월이나 치료를 받으며 치료비 500만 원을 보험사에 청구하거나 이를 토대로 보험사에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정부는 이 같은 일명 ‘나이롱환자’를 걸러내기 위해 2023년부터 장기간 진료 필요 시 의료 기관 진단서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할 방침이다. 상해 1~11등급의 중상 환자를 제외한 경상 환자에 한해 적용되며 4주까지는 진단서 없이 보장하되 4주 초과 시 진단서상 진료 기간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

상급 병실, 한방 분야 등에 대한 보험금 지급 기준도 구체화해 보험금 과다 청구를 막는다. 건강보험은 병실 등급에 따라 30~100%의 비용을 환자가 부담하지만 자동차보험은 병실 등급에 관계없이 입원료를 전액 지급한다. 특히 최근에는 한의원들이 상급 병실을 설치하며 상급 병실 입원료 지급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상급 병실 입원료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안 등 가능한 대안을 검토해 진료수가 기준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올 하반기까지 개선안을 마련해 내년 중 시행하는 게 목표다. 아울러 한방 분야 진료수가 기준도 개선한다.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은 첩약·약침 등의 자동차보험 수가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에 따라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연구 용역을 통해 수가 기준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차량 낙하물 사고 피해자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눈에 띄는 방안이다. 지금은 고속도로 등에서 차량 낙하물로 사고가 발생하면 치료비 등 손해 비용을 전적으로 피해자가 부담해야 한다. 무보험, 뺑소니 사고는 ‘정부보장사업’을 통해 사고 피해자에게 정부에서 우선 보상 후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지만 차량 낙하물 사고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년부터 정부보장사업에 추가한다. 한 해 약 800명의 차량 낙하물 사고 피해자가 발생하는데 이들에 대한 선제적 보상이 이뤄질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보험사 간 고객 주행거리 정보 공유도 실생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운전자별 주행거리 정보를 보험사끼리 공유하지 않아 보험사를 변경할 때 고객은 주행거리 특약 가입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내년부터는 운전자별 주행거리 정보를 보험개발원에 집중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아울러 지금은 보험료가 인상되는 경우 인상의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는데 내년부터는 객관적인 보험금 원가 변동 요인을 공표하게 해 소비자의 보험료 변동에 대한 수용성을 높인다.

이 외에도 부부 특약에 가입한 무사고 배우자가 이혼, 배우자 사망, 장거리 직장 발령 등으로 보험을 분리해서 가입할 경우 보험 가입 경력만 최대 3년 인정해주고 무사고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아 보험료 부담이 높았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무사고 기간을 동일하게 인정(최대 3년)해준다. 가입 경력 3년만 인정하고 무사고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아 연 보험료가 102만 원에 달했지만 앞으로 무사고 3년이 반영되면 보험료는 76만 원으로 뚝 떨어진다. 군인, 입대 예정자의 자동차 사고 사망 시 보상금도 근로자 일용 임금(약 월 270만 원)을 기준으로 책정해 보상 규모를 늘린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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