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바이든 향해 첫 일성 "적대정책 더 교활"..험로 예고
미 향한 위협은 없지만 기싸움 본격화 가능성..미는 "적대의도 없다"며 대화 촉구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직접 비난하면서 향후 북미관계에 험로가 예상된다.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를 '허울'로 깎아내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단절된 북미대화의 재개 가능성도 당분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30일 보도된 전날 시정연설에서 바이든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김 위원장은 "새 미 행정부의 출현 이후 지난 8개월간의 행적이 명백히 보여준 바와 같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오히려 그 표현 형태와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역대 미 행정부들이 추구해 온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지난 1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외교 관리들을 내세워 미국을 비판한 적은 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미국 새 정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에 대북 제재 완화 등 기대했던 정책 변화가 없자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일단 대화에 나오면 종전선언 등 모든 의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취지로 대화 복귀를 촉구한 것에 대해서도 '기만', '허울' 등의 단어를 동원해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세계가 직면한 근본적인 위험은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강권과 전횡"이라며 "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 가르기식 대외정책으로 하여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했다는 평가도 했다.
이어 대외사업 부문에 대미 전략구상 집행을 위한 전술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중 갈등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비판하며, 향후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의 무게를 둘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직접 미국을 비난하면서 미국과의 본격적인 기싸움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미국을 향한 위협 등 구체적인 행동조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 당장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위원장은 "국가방위력을 강화하는 것은 주권 국가의 최우선적 권리"라고 강조해 앞으로도 새로운 무기 개발을 위한 시험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은 앞으로도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면서 미국에 대한 도발 수위를 조금씩 올릴 가능성이 크다"며 "양측 입장 사이에 접점도 거의 없어 북미관계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한도 전반적인 정세를 살피며 미국과의 대화 기회를 모색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경제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코로나19 상황을 봐 가며 일정 시점에 명분을 찾아 대화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미국은 김 위원장의 연설과 관련, 일단 맞받아치는 대신 적대적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하고 대화를 촉구하는 등 원론적으로 반응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간) 연합뉴스의 서면 질의에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 의도를 품고 있지 않다"면서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 북한이 우리의 접촉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김 위원장이 미국을 강도 높게 비난한 것과는 달리 남측을 향해서는 연락선을 복원하는 등 관계 복원에 상당한 여지를 주고 있어, 향후 '통남봉미(通南封美)'식 기류를 바탕으로 한미 간 사이를 벌리려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무부 대변인이 "우리는 남북 협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남북 협력이) 한반도에 좀 더 안정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를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있다.
gogo21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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