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가연구개발혁신법'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

최호 2021. 9. 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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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혁신(革新)은 '가죽을 벗겨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영어인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어원은 '노바'(nova)로, '새로운 별'이라는 뜻이다. 한자와 영어 모두 새롭게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혁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혁신하다'라는 단어는 동사이며, 그 자체로 완전하지는 않다. 혁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혁신해야 하는 대상인 목적어가 필요한데 다양한 대상이 있을 수 있다. 기업이나 정부 같은 유형 조직뿐만 아니라 무형 시스템도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양적으로는 세계적 혁신국가이다.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부문 예산은 약 29조원이며, 민간 R&D 투자를 포함하면 100조원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혁신 선도국 이스라엘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다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놀라운 양적 성장에도 R&D 관리체계는 허술한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혁신 선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아킬레스건인 R&D 시스템이 혁신 대상일 필요가 있다.

다행히 올해 초 연구개발혁신법이 시행되면서 시스템적 혁신이 시작되고 있다.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는 연구자가 불필요한 행정에 시간을 소모한다는 불만이 많았고, 공급자 위주에서 연구자 중심으로 시스템이 전환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혁신법은 부처별로 상이하던 각종 규정을 일원화하는 등 R&D 관리체계를 혁신하고 있다. 연구비를 총액 범위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도록 하고, 연차 평가 폐지 및 정산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행정 부담을 덜고 신뢰에 기반한 자율적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연구자권익보호위원회를 신설해 필요시 다시 한번 제재 처분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연구자의 권익이 보호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혁신법이 연구자가 본연의 업무인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자 중심 환경을 조성하고, 글로벌 수준에 맞는 연구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직 혁신법이 시행 초기이고 아직 현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혁신법에 숙제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적극 홍보가 필요하다. 혁신법을 통해 개선된 부분도 많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경우도 많은 듯하다. 좋은 제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관성에 의해 기존 제도로 회귀할 수 있다. 혁신법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주요 고객인 연구자가 제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 한다.

둘째 혁신법은 진행형이어야 한다. 현장 목소리를 바탕으로 혁신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빅데이터, 온라인 민원 등 다양한 경로로 현장과 호흡하고 민간 전문가와 함께 이를 분석해야 한다. 특히 창의성이 가장 높은 신진 연구자들이 관료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좌절하지 않도록 각종 제도적 걸림돌을 찾아내 이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쪽으로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무엇보다 혁신법이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개별법이 다시 난립해서 혁신법의 입법 취지가 퇴색되고 무력화되지 않도록 기존 제도와의 정합성을 맞추면서 상위법 역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혁신법이 혁신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잊으면 안 된다. 기술 패권을 위해 세계 각국이 경쟁하는 시대에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혁신이 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혁신법의 존재 근본 이유이다. 과거와 달리 인공지능(AI) 같은 디지털 기반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산업 간 융합뿐만 아니라 기술과 시민사회, 문화예술, 윤리까지 융합되는 빅 블러(Big Blur)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처럼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가 모든 해답을 제공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학문 분야가 함께하는 융·복합 연구, 모든 혁신 주체의 참여 등이 절실하다.

혁신법을 통해 국가 R&D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됐다. 이제 연구 현장에 초점을 맞춘 제도 개선, 지속적인 홍보의 삼박자를 통해 혁신법이 혁신을 뚝심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joonmo@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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