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질투한 2인자?.. 36년간 빈 음악의 왕좌 지킨 '인기 작곡가'

기자 2021. 9. 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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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영화 '아마데우스'는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된다.

영화는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살리에리의 감정을 보다 깊이 있고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살리에리의 재능을 눈여겨 봐왔던 가스만은 그를 음악의 메카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데려간다.

살리에리는 평생 37편의 오페라를 남긴 인기 작곡가로 당시 그의 오페라들은 모차르트의 작품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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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남자의 클래식 - 안토니오 살리에리

38세에 궁정악장에 임명돼

평생 37편의 오페라 작곡

당대엔 모차르트보다 사랑받아

230년만에 발견된 악보 통해

두 사람 공동작업 확인되기도

1985년 영화 ‘아마데우스’는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중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된다. 영화는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를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살리에리의 감정을 보다 깊이 있고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보며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하느님을 원망하는 장면이나, 그토록 시기하는 라이벌(모차르트)의 작품을 끌어안고 감탄하며 동경하는 아이러니한 모습, 종국에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내모는 광기는 진한 잔상을 남긴다. 과연 살리에리는 영화의 이야기처럼 재능 없는 작곡가였고 모차르트를 향한 질투심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다 간 불행한 2인자였을까.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사진)는 이탈리아 레냐고에서 태어났다. 레냐고는 베네치아공화국의 속주로서 문화·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그 또한 부유한 가정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음악적 분위기의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성악과 오르간을 배우며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13세가 되던 해 돌연 부모를 모두 여의는 큰 시련을 맞는다. 이후 빈의 궁정작곡자이자 황제의 실내작곡가를 지낸 오페라 작곡가 플로리안 가스만이 살리에리 앞에 나타난다. 살리에리의 재능을 눈여겨 봐왔던 가스만은 그를 음악의 메카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데려간다. 가스만은 15세의 살리에리에게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시켰고 그로부터 1년 뒤 살리에리는 황제의 만찬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날 연주로 살리에리는 요제프 2세 황제의 눈에 들어 작곡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24세가 되던 1774년엔 궁정작곡가로 임명됐고 1788년에는 마침내 빈의 궁정악장으로 임명된다. 궁정악장은 음악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로 지금의 문화부 장관과 비견할 만하다. 38세에 궁정악장이 된 살리에리는 죽기 한 해 전인 1824년까지 무려 36년간 빈 음악의 왕좌를 지켰다.

살리에리는 평생 37편의 오페라를 남긴 인기 작곡가로 당시 그의 오페라들은 모차르트의 작품들보다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또 권력과 부, 명예를 모두 갖춘 인물로 영화의 내용과는 달리 모차르트를 질투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결국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모차르트와의 적대관계에 대한 루머가 풀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2015년 독일 출신의 음악학자 티모 유코 헤르만이 ‘체코 음악박물관’에서 우연히 한 악보를 발견하게 된다. 제목은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였고 작곡가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였다. 230년 만에 발견된 악보를 통해 두 사람이 공동작업을 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는 동료애와 우정을 통한 결과물로 여겨지고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

1785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6년 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함께 완성한 칸타타 형식의 성악 작품. 작품의 가사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등의 대본을 쓴 당대 최고의 오페라 대본가이자 궁정작가인 로렌초 다 폰테가 썼다.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이 칸타타는 당시 빈에서 활동하던 영국계 이탈리아 소프라노 낸시 스토리스에게 헌정됐는데 아마도 작곡 동기는 그녀의 건강 회복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4분 길이의 이 작품은 총 3개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노블한 분위기의 앞부분은 살리에리가, 이어지는 행진곡풍의 중간 부분은 모차르트가 썼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코르네티’라고만 알려진 미상의 음악가가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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