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 "승자는 패자들 위에 서 있는 것"

신진아 2021. 9. 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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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서 기훈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 / 사진=뉴스1
'오징어 게임'서 218번 참가자 역을 맡은 박해수 /사진=뉴스1
“‘킹덤’ 덕에 갓이 유행한대서 (‘오징어 게임’) 찍으면서 ‘달고나 같은 게 비싸게 팔리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는데 그게 현실이 돼 얼떨떨합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1위 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한국 아이들의 놀이문화를 생존 게임으로 만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영국을 포함해 76개국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의 공동 CEO인 테드 서랜도스는 “넷플릭스 작품 중 최고 흥행작이 될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황동혁 감독은 “방탄소년단, 싸이, 봉준호 감독 등이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듯, 저 역시 우리의 옛날 놀이지만 세계적인 호소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한편으론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돼 이런 말도 안되는 살벌한 서바이벌 이야기가 어울리는 세상이 됐다”고 씁쓸해 했다.
황동혁 감독 / 넷플릭스 제공
1번 참가자 역의 오영수와 456번 참가자 역의 이정재 /사진=뉴스1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10년 전 "데스게임 장르서 아이디어"
황 감독이 ‘오징어 게임’을 구상한 것은 2008년 무렵이다. 해외입양아의 아버지 찾기를 그린 ‘마이 파더’(2007년)로 데뷔한 그는 차기작을 구상하면서 만화방에서 죽치고 살았다. 경제적으로 다소 힘들기도 했던 그때, 일본만화 ‘라이어 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을 보다 ‘오징어 게임’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돈을 빌미로 모아놓고 게임을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엔 영화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으나 정작 “낯설고 기괴하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시기상조라 판단했다. 이후 ‘도가니’(2011년)로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의 심각성을 알린 그는 ‘수상한 그녀’(2014년)로 866만명의 관객을 모아 흥행감독에 올랐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남한산성’(2017년)을 거쳐 10년간 묻어뒀던 ‘오징어 게임’을 다시 꺼냈다. 황 감독은 “넷플릭스 한국 진출 후 (콘텐츠 기획·제작에 있어) 금기의 영역이 깨지고 있던 중 어느날 갑자기 생각해보니 그때보다 ‘오징어 게임’이 더 어울리는 세상이 돼 있더라”며 “비트코인, 부동산, 주식 등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이 늘었고, 빈익빈부익부는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이전에도 ‘배틀로얄’(2002년)이나 ‘헝거게임’(2012년) 시리즈와 같은 데스게임 장르의 영화·드라마는 많았다. ‘오징어 게임’ 공개 이후 일각에서 표절 운운한 것도 이 때문. 하지만 일본의 유명만화가 오쿠 히로야가 “(오징어 게임이) 일본 콘텐츠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대본과 연출로 (작품을) 신선하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처럼, ‘오징어 게임’은 기존 데스게임 작품과 차별화된 이야기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지옥 같은 호러쇼”(영국 가디언)라는 호평을 얻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인기의 비결로 “심플함”을 꼽으면서 “게임보다 사람에 방점을 두면서 휴먼드라마적 요소를 갖춘 점과 영웅이 아니라 루저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기존 데스게임 작품과 차별된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부터 세계 시청자를 염두에 뒀기에 생존 게임을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30초 안에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놀이로 골랐다”며 “게임이 단순하니까 시청자들이 게임 자체보다는 참가자의 감정에 더 이입하게 됐는데, 초반에 기훈과 상우, 새벽 등 주요 인물들의 서사를 자세히 다룬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동심을 자극하는 알록달록한 공간에서 피튀기는 경쟁을 펼쳐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은 게임 설계자에겐 향수를 자극하는 곳이지만 게임 참가자들에게는 당장 내 목숨이 오가는 죽음의 공간이다. 황 감독은 “게임의 시작은 무조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열고, ‘오징어 게임’으로 닫겠다고 결정한 뒤 게임의 룰이 단순하고, 시각적 요소가 뛰어난 게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수백명이 함께 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쇼킹한 대학살을 연출하기에 좋았죠. ‘오징어 게임’은 내가 어릴적 했던 가장 격렬한 게임이었어요. 남은 자들의 처절함을 보여주고 싶었죠.” 여성에게 불리한 게임만 나온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황 감독은 극중 참가자 모집책인 공유와 ‘456번 참가자’ 이정재가 실뜨기를 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규칙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의 딱지치기로 바꿨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을 감시하는 일꾼들 /사진=뉴스1
탈북자 강새벽 역의 정호연(오른쪽)과 지영 역의 이유리 /사진=뉴스1
■"단 한명의 위너, 패자들의 시체를 밟고 서있는 것"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면 게임을 종료할 수 있다’는 게임의 룰도 ‘오징어 게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게임 진행을 총괄하는 프런트맨은 게임 과정에서 “공정과 평등”을 강조한다. 황 감독은 “해외에서 게임 룰에 대해 놀랍고 신선하다고 평가해줬는데, 바깥세상이 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은 45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살아남은 단 한명의 생존자에게 456억원의 상금을 약속대로 내놓는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승리를 쟁취한 ‘위너’의 이야기가 아니다.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은 루저들의 이야기”라며 “아주 천재적이거나 불굴의 의지로 위기를 돌파하는 영웅이 없으며, 끝까지 살아남은 기훈마저도 별다른 능력이 없고 타인의 도움과 운에 의지해 각 단계를 통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훈은 현실에선 노모의 등골을 빼먹는 한심한 아들이자 무능력한 남편·아버지이지만, 목숨이 오가는 생존게임에서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황 감독은 “해고 후 창업했다 실패한 기훈은 평범한 가장의 몰락을 대표하는 캐릭터”라며 “홀짝게임에서 봤듯 극단적 상황에서 누군가 배신할 수 있는 나약한 인물이지만 무한경쟁 사회에선 누구나 기훈과 같은 처지에 처할 수 있다”고 짚었다. 기훈은 엘리트 출신의 펀드매니저 상우와 서로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며 대비도 이룬다. 상우는 ‘징검다리 게임’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정짓기 위해 앞사람을 밀어버린다. 기훈은 그런 상우에게 ‘그 사람 덕에 우리가 다리 끝까지 왔는데 왜 그 사람을 밀었느냐’고 비난한다. 상우는 그런 기훈에게 '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절박했던 노력 덕분'이라고 반박하나 기훈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과 노력 덕분'이라고 응수한다. “징검다리 게임은 앞사람이 죽어서 길을 터줘야 뒷사람이 갈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승자들은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승자들은 패자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훈은 마지막에 머리를 빨갛게 염색한다. 황 감독은 “기훈은 과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반문했다. "기훈은 그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을 한 것이죠. 동시에 이건 기훈의 분노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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