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영 동두천시의장 "김리진-워커대장 영원하다"

강근주 2021. 9. 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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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영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29일 의장실에서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 회장과 만나 6.25전쟁과 워커 대장과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장은 지난 7월 정문영 의장에게 본인이 걸어온 삶이 담긴 활동내역과 사진, 관련 보도자료를 소포로 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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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영 동두천시의장-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 회장(오른쪽) 29일 환담. 사진제공=동두천시의회

【파이낸셜뉴스 동두천=강근주 기자】 정문영 동두천시의회 의장은 29일 의장실에서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 회장과 만나 6.25전쟁과 워커 대장과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날 만남은 정문영 의장을 만나고 싶다는 동두천시민 김리진 회장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정문영 의장은 96세 고령인 점을 감안해 김리진 회장 자택으로 의장 관용차량과 비서실장을 보내 동두천시의회로 모셔왔다. 환담 이후 김리진 회장이 귀가할 때도 의장 관용차량을 이용하도록 예우했다.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장은 지난 7월 정문영 의장에게 본인이 걸어온 삶이 담긴 활동내역과 사진, 관련 보도자료를 소포로 보낸 바 있다. 이들 자료를 살펴본 정문영 의장은 김리진 회장의 고귀한 삶을 소개하며 그 뜻을 기리자는 내용이 담긴 글을 모 일간지에 기고했다. 이날 두 사람 만남은 그 기고문을 접한 김리진 회장이 정문영 의장에게 감사를 표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이뤄졌다.

6.25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이던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은 낙동강 전선이 무너질 위기에서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유엔군의 결사항전을 지휘했다. 그가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선은 뚫렸을 것이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 평가된다. 워커 장군은 1950년 12월 작전 도중 의정부 인근에서 전사했다. 당시 육군정보학교 교관으로 첩보부대에서 근무했던 김리진 회장은, 워커 장군의 사망지점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고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 하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김리진 회장은 1979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그를 기리는 일을 평생 숙제로 삼았다.

미군 자료를 받아 3년을 끈질기게 조사한 끝에 마침내 1986년 지금의 도봉역이 워커 장군 순직 장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듬해에는 워커 장군이 전사한 지 37년 만에야 추모기념비를 제막하고 2009년 순직 지점에 표지석을 세웠다.

김리진 회장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워커 장군처럼 누군가에게 소중한 남편,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사재를 털어 평생 그 분을 기억하는 일을 했다. 올해 96살인 내가 살아갈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워커 장군의 삶을 ‘기억’하며 살아온 내 한평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군가 꼭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라며 정문영 의장에게 거듭 감사인사를 건넸다.

정문영 의장은 이에 대해 “회장님이 우리 동두천시민이란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 회장님의 숭고한 일생은 한미우호와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보훈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회장님의 고귀한 ‘기억’의 삶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다.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하며, 앞으로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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