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도 없지만 敵도 없는 '무색무취' 기시다..日 새총리는 '노잼남'

김선영 기자 2021. 9. 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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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기시다 후미오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을 응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아내 유코(왼쪽에서 두 번째)와 세 아들. 페이스북 캡처

■ 글로벌 포커스 - 결선투표서 예상 외 압승… 내달 4일 취임

祖父 선거구 세습 ‘3세 엘리트’

히로시마 1구서 낙마없이 9選

온건보수성향 ‘고치카이’ 수장

권력자와의 충돌 피하며 생존

거창한 슬로건보다 현실 대응

시민 조언 ‘노트 30권’에 빼곡

1993년 아베와 첫 중의원 당선

정치적 입장 다르지만 순종형

아베 내각에서 외무상 등 중용

‘고노 열풍’ 확인…黨개혁 과제

“권력 집중·타성 막겠다” 선언

신임 일본 총리는 ‘노잼남(재미없는 남자)’.

일본 한 언론은 29일 당선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신임 자민당 총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해 당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와의 경쟁에서 실패하며 들은 ‘재미가 없다’는 말에서 파생된 별명이다. 실제로 기시다 총재의 정치 역정은 심심하다. 정치적 상황과 권력자의 의향에 맞춰 충돌을 피하며 살아남았다. ‘탈원전’ ‘모계(母系) 일왕제’ 등을 주장해온 ‘개혁’ 이미지의 경쟁자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 담당상과는 정반대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이 ‘소신 없는 남자’는 바로 재미없지만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덕분에 오는 10월 4일 100대 일본 총리에 오르게 됐다.

◇인종차별 겪으며 꾼 정치인의 꿈 = 일본의 총리가 될 기시다 총재는 1957년생으로 도쿄(東京)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적 기반은 히로시마(廣島)에 두고 있다. 일본의 많은 타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기시다 역시 선거구를 세습한 3세 엘리트 정치인이다. 그의 조부 기시다 미사키(岸田正記), 부친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 모두 중의원 출신이다.

그는 미국에 주재원으로 파견된 아버지를 따라 뉴욕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겪은 인종차별을 계기로 정치인의 꿈을 품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삼수 끝에 와세다대 법대를 졸업한 뒤,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해 5년간 근무한 뒤 당시 중의원이었던 아버지의 비서로 들어갔다. 그는 지난 1992년 부친 후미타케가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히로시마 1구에서 선거에 당선된 뒤 연속 9선을 하고 있다.

기시다 총재는 주변국과의 대화, 타협을 강조해온 온건파이자 역대 총리 4명을 배출한 명문 파벌 ‘고치카이(宏池會·현재 기시다파)’의 수장이다. 그는 은행원 출신이었던 만큼 경제 관련 정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번 총재 선거에는 경제·분배정책의 일환인 ‘레이와판 소득 배증 정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시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부터의 전환을 주장하며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과거 아베노믹스의 금융완화 정책 등 성장 전략은 그대로 유지하되, 기업의 이익이 개인에게도 고루 돌아가도록 ‘분배’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재정확대나 금융완화를 통해 계층 간 양극화를 줄이고 이를 소득 증가로 연결하겠다는 게 기시다 총재의 구상이다. 그는 성장 촉진을 위해 향후 10년간 소비세는 올리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내 편도, 적도 없는 무색무취의 정치인 = 일본 정계는 기시다 총재에 대해 ‘무색무취’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쓴다. 늘 애매하고 무난한 답변을 해 논란을 피해가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의향을 따르는 무난한 조율자의 모습이 기시다 총재의 대표적 이미지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나 동성결혼, 선택적 부부 별성제 등 첨예한 사안에는 침묵하거나 대답을 회피하기 일쑤다. 정치적 비전이 없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그래서 기시다 총재는 ‘중도온건파의 에이스’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슬로건보다는 사안에 따른 현실적인 대응에 충실한 정치를 해왔다는 평가도 받는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만난 유권자의 조언을 꼬박꼬박 적어놓는 ‘기시다 노트’는 유명하다. 지금까지 모아온 노트만 30권에 이른다고 전해진다. 이는 “지시를 하고 이끌어가는 것만이 리더십이 아니라 국민의 주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행동하는 게 리더”라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어떤 정국에서도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동기’ 아베 측과 합종연횡 통해 압도적 승리 = 현실적 계파 투쟁에 능숙한 기시다 총재의 장점은 이번 선거에서 빛을 발했다. 1차 투표에서 고노 행정상이 앞설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지만, 선거 전날인 28일 아베 전 총리가 지지하는 3위 후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과의 전략적 연대에 전격 합의한 것. 이 기세 덕분에 기시다 총재는 1차 투표에서 당초 예상을 깨고 고노 행정상을 1표 차이로 앞섰고, 2차 투표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이 배경에는 아베 전 총리와의 밀월관계가 놓여 있다. 1993년 중의원에 당선돼 중앙정치에 함께 처음 입성한 ‘동기’인 아베 전 총리는 기시다 총재를 중용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04년 4월 문부과학성 부상으로 활약한 기시다 총재를 ‘슈퍼 부상’으로 불렀고, 2007년에는 내각부 특명 담당상으로 임명했다. 기시다 총재의 첫 입각이었다.

온건파인 기시다 총재는 극우에 가까운 아베 전 총리와는 정치적 입장이 다르지만, 아베 전 총리는 순종형인 기시다 총재를 지지했다. 실제로 기시다 총재는 제2차 아베 내각에서 외무상과 자민당 정조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기시다 총재는 ‘보수층’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면서 원로들에게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처세술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대 과제는 자민당 개혁과 연내 중의원 선거 승리 = 기시다 총재의 최대 과제는 자민당 개혁이다. 현재 자민당 1인자인 스가 총리가 72세,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이 82세로 자민당 내 청년·중진의원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이 분노가 이번 선거에서 ‘고노 열풍’으로 이어졌던 만큼, 기시다 총재도 명확한 해법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다. “권력의 집중과 타성을 막겠다”면서 젊은 의원과 당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당직자 임기 1년·연속 3선 제한’을 내놓은 상태지만, 젊은층의 불만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며 계파들의 반발 가능성도 예상된다. 오는 11월 중의원 선거도 중요하다. 중의원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젊은 간판’을 원했던 젊은 의원들의 기대가 사라진 만큼, 기시다 총재가 이를 어떻게 충족시켜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따낼 수 있을지가 앞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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