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오와 다르다" 일본서 유전자편집 토마토, 세계 첫 시판
노벨상 받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개발
일 식약처, '유전적 돌연변이' 유사..안전성 시험 면제
최초의 유전자변형작물(GMO·지엠오)은 1994년 미국 생명공학기업 칼젠이 출시한 플레이버 세이버(Flavr Savr) 토마토였다. 토마토의 세포벽 분해 효소 생성을 방해하는 유전자를 추가해 쉽게 무르지 않도록 변형시킨 토마토다.
이후 1996년 제초제 내성을 강화한 미국 몬샌토의 ‘라운드업 레디’라는 대두 출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지엠오 작물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2019년 현재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29개국에서 지엠오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지엠오는 식품의 안전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부 유전자를 새로 주입하지 않고, 내부 유전자를 교정하는 유전자편집 방식은 기존 지엠오의 논란을 피할 수 있을까?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안겨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편집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변형한 식품이 세계 처음으로 일본에서 시판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시판된 최초의 유전자편집작물도 토마토다. ‘시칠리안 루즈 하이 가바’(Sicilian Rouge High GABA)라는 긴 이름의 이 토마토는 방울토마토다.
2018년 출범한 사나테크 시드(Sanatech Seed)란 신생기업이 크리스퍼-카스9(CRISPR/Cas9)이라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개발했다. 개발 주역은 이 회사 대표이기도 한 츠쿠바대 에즈라 히로시 교수(유전공학)다.
크리스퍼-카스9은 박테리아의 면역 체계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한 유전자 가위다. 크리스퍼는 가위질을 할 부위로 안내해주는 물질, 카스9은 가위 역할을 하는 분해 효소다. 크리스퍼가 표적 부위에 달라붙으면 카스9이 이를 절단한다.
사나테크 시드는 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아미노산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BA·가바)을 분해하는 효소를 덜 생성하도록 유전자를 교정했다. 가바는 혈압 상승을 억제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교정 후의 토마토는 가바 함량이 일반 토마토보다 4~5배 더 많아졌다.
올해 봄 4200여 농가에 첫 보급
사나테크시드는 “온라인 채널로 주문을 받아 17일부터 유전자편집 토마토 배송을 시작했다”며 “토마토에 대한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이번에 시판하는 토마토는 지난 5월부터 4200여 원예농가에 공급한 모종에서 처음 수확한 것이다.
영국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이 토마토는 크리스퍼기술을 적용해 개발된 여러 유전자편집 작물 가운데 처음으로 시판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2019년 유전자 편집 식용유(대두유)가 출시됐지만, 이는 크리스퍼 이전의 기술(탈렌)을 적용한 것”이며 “캐나다에선 크리스퍼 옥수수가 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아직 시중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갈변하지 않는 버섯도 2016년 미국에서 시판 승인을 받았지만 시판 소식은 없었다고 한다.
미·일선 기존 지엠오와 다른 규제 기준 적용
유전자 편집도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변형했다는 점에선 기본적으로 기존의 지엠오와 같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가 유전자편집(재조합) 작물도 기존의 유전자변형작물 관련 법규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나라에서는 외부 유전자가 추가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들어 기존 유전자변형작물과는 다른 규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일본이 그런 사례다. 일본 식약처는 2019년 10월 유전자조작 식품 신고제를 도입해, 새로운 유전자를 추가하지 않은 유전자편집 식품은 안전성 시험을 면제해줬다. 유전자 편집은 기존 지엠오와 달리, 본질적으로 자연에서 발생하는 유전적 돌연변이와 유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근거로 일본 당국은 2020년 12월 이 토마토에 대해 유전자변형작물 규제 법규를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함으로써 유전자편집 토마토 출시의 길을 터줬다.
사나테크시드는 유전자편집 토마토의 해외 시판도 추진하고 있다. 이미 미국 농무부가 이 토마토가 기존 유전자 변형 작물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반면 영국과 유럽연합에서는 유전자편집작물도 유전자변형작물로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곧 이와 관련한 법률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뉴사이언티스트’는 전했다.
살이 50% 더 많은 유전자편집 참돔도 나올 듯
유전자편집 옹호자들은 이 기술이 소비자와 환경은 물론 농민과 농장 동물에게도 많은 이점을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뉴질랜드 과학자들은 지난해 유전자편집을 이용해 피부 얼룩무늬가 회색인 젖소를 탄생시켰다. 연구진은 피부색이 옅어지면 햇빛 반사율이 높아져 소가 따뜻해진 기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열 스트레스는 우유 생산량을 줄이고 생식력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선 또 살 부위가 최대 50% 더 많은 유전자편집 참돔을 개발했다. 일본 언론은 이 참돔 역시 곧 시판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에선 로탐스테드연구소(Rothamsted Research)가 만든 유전자편집 밀의 시험재배가 시작됐다. 이 밀로 만든 빵은 발암 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의 수치가 더 낮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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