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예능화를 넘어선 스포츠 문화화가 시급하다 [최의창 기고]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겸 서울대 스포츠진흥원장 2021. 9. 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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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요즘 거실에서 주인공은 단연코 스포츠다. 국내 프로스포츠, 영국 프리미어리그, 미국프로야구 등 오랜 안방마님이 자리를 지킨다. 다른 한편에는 골신강림, 골 때리는 그녀들, 축구 야구 말구, 뭉쳐야 찬다 등 새로운 손님인 스포츠 예능이 자리하고 있다. 스포츠 게임은 승부를 겨루며 팽팽한 긴장감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스포츠 예능은 스타들의 실수를 지켜보며 즐거운 웃음을 선사한다. 국민 ‘스포츠 리터러시(Sport Literacy)’가 높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징후다. 선진국 징표다. 스포츠 리터러시는 ‘신체활동(스포츠, 운동)을 잘 하고, 잘 알고, 잘 느낄 수 있는 자질’을 말한다. 스포츠는 이제 현대인의 필수능력(또는 자질)이 됐다. 스포츠라고 불리는 유희적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문화자본을 얻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생겨난다. 최근에는 ‘스포츠자본(Sporting Capital)’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개념을 주장하며 실증적으로 증명하려는 연구자 그룹도 있다.

나는 스포츠 리터러시를 세 번째 리터러시로 간주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3대 리터러시가 필수적이다. 첫 번째는 문해력으로서 리터러시(literacy)이며, 두 번째는 수리력으로서 뉴머러시(numeracy, numeral literacy)다. 세 번째는 방금 언급한 ‘스포러시(sporacy)’다. 현대인으로서 신체활동, 운동, 스포츠를 할 줄 모르면, 그는 운동맹(運動盲)으로 취급받는다. 운동맹은 선진국일수록 적다. 운동하기가 읽고 쓰기나 셈하기처럼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기능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21세기 새로운 3R의 하나로 스포츠를 주장한다. 그것들은 wRiting, aRithmatic, spoRting이다. 리터러시, 뉴머러시, 스포러시가 3대 리터러시인 이유다. 각각 읽고 쓰기, 셈하기, 운동하기다.

리터러시, 뉴머러시, 스포러시는 낮은 수준인 경우 각각 문자력, 계산력, 운동력으로 부를 수 있다. 그냥 단순한 수준에서 글자를 읽고 쓰는 기능, 계산을 하고 돈을 세는 기능, 운동 기능을 구사하는 기술 등 수준이다. 그런데, 이보다 높은 수준인 경우에는 문해력, 수리력, (운동)향유력이라고 부른다. 나는 수준 있는 스포러시를 ‘향유력(享有力)’이라고 부른다. 운동동작을 수행하거나 스포츠 경기를 실행하는 것을 포함해 유희적 신체활동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동시에 표현하는 말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은, 지금 안방의 스포츠 열기는 한국 국민으로 하여금 향유력보다는 운동력(경기력)으로서 스포츠 리터러시를 길러준다는 것이다. 안보다 밖, 속보다 겉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물론, 겉과 밖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체이자 전부, 그리고 전모(全貌)가 아님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 리터러시 구성요소는 운동능, 운동지, 운동심이다. 신체활동을(에 대해) 잘 하고(能), 잘 알고(智), 잘 느끼는(心) 기본자질이기 때문이다. 기본자질이므로 ‘운동소양(능소양, 지소양, 심소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자질 또는 소양이 밖으로 드러나 활성화해 다양하게 발휘될 때는 ‘운동향유력’이라고 부른다.

운동을 즐기는 것이 운동을 향유하는 것이다. 즐기는 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읽기, 쓰기, 보기, 듣기, 말하기, 그리기, 부르기, 모으기, 생각하기, 응원하기 등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단순히 운동할 수 있는 운동력을 넘어서, 운동의 모든 차원들을 가능한 다채롭게 맛보고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제3 리터러시로서 스포러시 개념은 스포츠를 게임이나 운동 수준이 아니라, 문화 수준에서 이해하고 실천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 삶과 일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드러나고 체험되는 문화 양식들로 표현되는 스포츠를 향유할 때에만, 스포츠 리터러시는 운동력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휘몰아치는 스포츠 예능 강풍은 반갑기도 하면서 우려스럽기도 하다. 스포츠를 오락거리로 더욱 고정시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오락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신체활동, 운동) 자체가 오락거리에 그치지 않는 문화자산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스포츠 경기나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스포츠 문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가. 스포츠작가와 대화, 스포츠미술전시회 안내, 스포츠역사 탐방 등 말이다. 게임놀이나 오락거리 차원을 넘어(뚫고) 스포츠 문화적 차원을 체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포러시가 필수적이다. 스포츠 예능화를 넘어선 스포츠 문화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방송계와 체육계 간 협업,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촉구한다.

운동맹(운맹)을 벗어나지 못해서 겪는 손해와 곤란은, 비록 당장 느끼지 못하더라도, 문맹과 수맹의 경우에 버금간다. 한 개인이 전 인생에서 운동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할 때, 그가 누릴 수 있는 양질의 삶으로부터 엄청나게 멀어져 있게 될 것이다. 국가나 지역사회는 지금부터라도 전 국민의 스포러시 증진을 위한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 겸 서울대 스포츠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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