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강하게 부딪쳐라"..지옥의 아자디 원정, 태극전사 선배가 고하다

김용일 2021. 9.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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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그가 지난 2004년 3월17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치른 아테네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이란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이 경기는 한국 축구가 각급을 통틀어 아자디에서 이긴 유일한 경기다. 스포츠서울DB
아자다스타디움. 제공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이란 테헤란에 있는 아자디 스타디움(아자디)은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린다. 최근 5년 사이(2016년 9월 이후) 전적만 봐도 그렇다. 이란 축구대표팀은 이 기간 한국을 상대로 1-0 승리한 것을 포함해 아자디에서만 총 14차례 A매치를 치러 12승1무1패를 기록하며 딱 한 번 패했다. 지난 2017년 3월18일 같은 중동 국가인 이라크와 친선전에서 0-1로 진 게 전부다.

그 외엔 월드컵 예선 등을 거치면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무려 37골을 넣고 단 4실점 할 정도로 공수에서 원정팀을 압도했다. 물론 지난해 10월10일 약체인 캄보디아와 월드컵 2차 예선 14-0 대승 결과가 반영됐으나 아자디 땅에서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뽐낸 게 사실이다.

한국 축구에도 ‘아자디 징크스’가 따른다. 아자디는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해 건립된 아자디 스포츠 컴플렉스 내에 위치한 다목적 경기장이다. 한국 A대표팀은 지난 47년간 이곳에서 이란과 7차례 격돌했는데 2무5패를 기록하며 승전고를 울리지 못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아자디에서 3경기를 치렀지만 1골도 넣지 못하고 연달아 0-1로 패했다. 한국 선수 중 가장 최근 아자디에서 골 맛을 본 건 박지성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로 지난 2009년 2월11일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후반 막판 헤딩 동점골을 넣어 한국의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지난 2009년 2월 아자디 원정에서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을 앞두고 몸을 푸는 태극전사들. 허정무 당시 대표팀 감독이 지켜보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아자디는 왜 이토록 원정팀에 어려운 무대일까. 그리고 오는 17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4차전에서 아자디 원정을 치르는 ‘벤투호’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선배 태극전사에게 물었다.

아자디는 해발 1273m 고지대에 놓여 있다. 2003년까지는 12만 명의 수용 규모를 자랑했다. 실제 1997년 프랑스월드컵 최종 예선 이란-호주전에서 12만8000명의 관중이 몰린 적이 있다. 이후 개보수로 1인용 좌석이 경기장 내 채워지면서 수용인원이 줄어 현재 8만석 규모다. 하지만 여성 관중의 입장을 금지해온 이슬람 문화와 더불어 수만여 남성 관중이 뿜어내는 불같은 열기는 여전하다.

12년 전 대표팀 수장으로 아자디에서 무승부를 거둔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고지대는 산소가 부족하다 보니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현지 적응을 위해 일찍 가서 준비해도 모자란 데, 월드컵 예선처럼 홈에서 경기하고 며칠 사이 아자디로 이동해 경기하는 건 더욱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골을 넣은) 박지성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버텨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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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표팀 막내급으로 뛰었고 2010년대 아자디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한 ‘쌍용’ 기성용(FC서울)과 이청용(울산 현대)도 진한 기억을 품고 있다. 기성용은 “남자들만 10만 명 가까이 킥오프 2시간 전부터 몰려든다. 그런 분위기에 위축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낯선 경기장 분위기는 물론이고, 열악한 훈련장과 더불어 숙소로 쓰는 호텔에서도 우리의 요구 조건이 잘 반영 안 된 적이 많다”며 그라운드 안팎으로 홈 텃세가 컸음을 떠올렸다.

대표팀이 아닌 클럽 경기도 마찬가지. 지난 2013년 아자디를 홈으로 쓰는 에스테그랄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경험한 고요한(FC서울)은 “이란 팬의 열성적인 응원에 주눅 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현역 시절 아시아 올스타에 뽑혀 아자디에서 이란 대표팀과 맞붙었던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이벤트 경기였음에도 10만여 팬이 몰려 자국 대표를 응원하더라”며 극성스러운 분위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아자디 극복의 열쇠는 무엇일까. 고지대라는 특수성은 단번에 극복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태극전사 선배는 최소 장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초반 주도권을 따내야 한다. 우선 이번엔 이란축구협회가 코로나19 상황으로 홈 관중 입장을 1만 명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 기성용은 “(무관중이면 더 좋지만) 1만명만 들어오는 것도 우리에게 호재다.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경기했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2010년 이란과 경기에서 상대와 신경전을 펼치는 이청용. 스포츠서울DB
손흥민이 지난 2019년 6월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른 이란전에서 상대 수비를 따돌리며 드리블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은 “시작부터 강하게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고 구체적인 해법을 내놨다. 한국은 아자디에서 A대표팀은 무승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으나 연령별 대표가 딱 한 번 이긴 적이 있다. 지난 2004년 3월 아테네 올림픽 최종 예선 2차전 때 1-0 신승인데, 당시 이 위원장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는 “이란은 페르시안 특유의 힘을 지녔다. 유럽에 가까운 신체조건”이라며 “선수들이 아자디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는 상태에서 초반 그런 힘에도 위축되면 경기가 안 된다. 우리가 시작부터 움츠리지 말고 경합 상황부터 강하게 부딪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킥오프 이후 10분 이내에 우리가 강하게 나서면 분명히 상대도 당황한다. 그러면 우리는 흐름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손흥민 등 발 빠른 선수를 활용하기 위해서 주위 선수가 더 많이 뛰고 돕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청용도 “우리 때보다 더 많은 해외 경험을 한 선수가 대표팀에 즐비하다. 어려운 상황에도 강한 마음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면 아자디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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