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10곳 중 4곳 '면접 성비' 기록 나몰라라

최윤아 2021. 9.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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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일자리위, 부정채용 사건에 지침 마련
지침 4년째, 300개 기관 중 130곳은 '나몰라라'
주무부처 기획재정부, 관련 공문 보낸 적도 없어
게티이미지뱅크

공공기관 10곳 중 4곳 이상(43%)이 면접 때의 성비 데이터 등을 기록·관리하라는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케이비(KB)국민은행, 한국가스안전공사 등이 남성 합격자를 늘리기 위해 서류·면접 점수를 조작한 사실이 계기가 되어 2018년 7월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기 내놓은 방안으로, 의무 관리되는 면접 성비 데이터를 최종 합격자 성비와 대조하면 면접에서 성차별이 있었는지 추론할 수 있고, 향후 채용 성차별 발생시 관련 근로감독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응시자를 처음 대면하는 면접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음에 불구하고 이 단계의 성차별을 모니터링 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가운데 나온 긴요한 지침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그러나 대책 발표 후 3년이 흐른 현시점까지 이 지침은 현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29일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기획재정부와 350개 공공기관을 통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전체 350개 공공기관 중 기한 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48개), 올해 신규 공공기관으로 지정(2개)된 50곳을 제외한 나머지 300개 공공기관 가운데 130개(43.3%)가 면접 성비 데이터를 기록·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차 면접 성비만 일부 기록하거나, 올해부터 관리하겠다고 답변한 곳 등 14개 기관은 불완전 이행으로 보아 ‘미이행’에 포함시켰다고 의원실은 설명했다.

미이행 공공기관 중 상당수가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해 성비 관리가 불필요하다’는 점을 사유로 들었다. 이는 제도의 취지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애초 일자리위원회는 “채용 성차별은 암묵적·관행적으로 이뤄진다. (…) 그동안 여성 고용정책은 채용 이후 단계에 집중됐는데 채용 ‘과정’에서 공정성 보강을 위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도 추진 경위를 설명하며 “블라인드 채용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응시 서류 등에 성별은 표시하지 않되, 면접 시 기관별로 성비를 자체 집계․파악하라”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이처럼 미이행률이 높고, 엉뚱한 해명까지 나오는 것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의 관리 소홀 탓이 크다. 실제 장혜영 의원실이 이달 ‘면접 성비 기록·관리 지침 관련해 각 공공기관에 보낸 공문 일체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기재부가 “별도 요청한 공문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2018년 7월 최초로 지침을 안내한 이후 3년여 동안 각 공공기관이 데이터 기록·관리를 하고 있는지 점검하지 않은 것이다. 석달 전인 지난 6월 취재 당시의 기재부 인재경영과장은 ‘면접 성비 기록·관리가 되고 있느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관리 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지침을 어기는 기관 중엔 한국투자공사, 한국재정정보원 등 기재부 산하기관도 있다. 장혜영 의원은 “기재부는 엉터리 행정을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점검 및 관리에 나서는 것은 물론, 면접 응시자와 최종 합격자 성비 차이가 극심할 경우엔 기재부 차원의 감사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역시 기획재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했다. 2018년 일자리위원회 여성티에프(TF) 위원장을 맡아 ‘채용 성차별 해소방안’ 마련을 주도했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9일 <한겨레>에 “공공기관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책임은 기본적으로 기재부에 있다. 당시 범부처가 여러 차례 회의 끝에 도출한 대책인 만큼, 기재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에 (면접 성비를) 포함시키든지, 공공기관이 면접 성비 기록을 기재부에 ‘보고’하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든지 해서 실효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공공기관 여성 관리자 40명을 심층면접조사 했더니, 다수가 블라인드 채용 도입 이후 ‘단계별 리셋’ 방식으로 채용이 진행됐다고 답했다. 면접 비중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라며 “날이 갈수록 더 교묘해지는 채용 성차별을 파악하기 위해 채용절차법이나 시행령에 명시해서라도 면접 성비가 기록·관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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