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탄소중립 시나리오..시민들 "피해 볼 노동자 최우선 고려해야"
기후위기·탄소중립 인식 높아졌으나
모순·충돌되는 답변 여전히 많아
시나리오 경로 가르는 쟁점 그대로 남았다
대통령 소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8~9월 5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기후변화·탄소중립 관련한 학습·숙의 과정을 거친 뒤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적당한 폐쇄 시기’로 2050년을 꼽는 시민들이 가장 많았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는 석탄발전소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기후·환경단체의 요구가 있었지만 석탄화력발전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 등 ‘정의로운 전환’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고민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은 탄소중립 달성 목표 시점을 ‘2050년보다 앞당겨야 한다’고 했다. ‘탈석탄은 늦게·탄소중립은 이르게’라는 모순적인 답을 찾은 것이다.
한 달여의 숙의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논의한 전환 과정에서의 쟁점, 그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탈석탄 시점을 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를 유지할 경우 국내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탄소중립위원회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500여 명 참여시민…학습·숙의 후 기후변화, 탄소중립 인식 높아져
시민들은 지난달 7일 출범부터 이달 11~12일 온라인 대토론회까지 약 한 달 동안 동영상 강의(6시간)와 자발적 교재 학습·온라인 조별(10명) 토론 등을 거치며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1차(8월7일·533명), 2차(8월28일·528명), 3차(이달 10일·503명), 4차(이달 11~12일·459명)가 진행됐다. 탄중위는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학습 자료를 배포하고 이를 통해 인식을 개선하고 만약 인식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설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순차적으로 설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시민들 의견을 확인한 뒤 시나리오에도 반영한다는 계획이었다.
<한겨레>가 29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탄소중립시민회의 참여시민단’ 1~4차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시민들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민감도가 설문을 거듭할 수록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은 석탄발전소라는 응답이 78.6%→86.1%→91%→97.5%로 ‘정답’을 고르는 비율이 높아졌다.
2050 탄소중립 달성 목표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2050년보다 빨리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응답이 51.7%→57.2%→52.8%→55.2%로 4%포인트 올랐다.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을 해야한다’는 응답도 39%를 유지했다. 두 답안을 합치면 2050년 이전 탄소중립 달성 응답 비율이 94.3%에 이른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수립 때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할 요소는 전환 과정에서 배제·소외되는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이 17.1%→21.6%→26.5%로 1위였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19%→19.9%→20.4%로 꾸준히 증가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우선 시행되어야 하는 정책으로는 ‘업종·저탄소 기업으로의 전환 지원’이 46.1%→38.6%→28.2%로 줄었지만, ‘새로운 일자리 지원’은 20.6%→28.5%→32.1%로, 교육체계를 바꾸는 정책은 11.9%→15.6%→21.6%로 늘었다.
시민들이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 첫 번째는 ‘입장 차이로 인한 사회 갈등’이었다. 20.2%→24.1%→26.6%비율로 학습할수록 높아졌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어려움이 커지는 것’도 16.5%→19.8%→26%로 점차 높아졌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전기요금을 추가 지불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월5천원 이내는 28%→33.7 %→30 .6 %→ 35 .4 %로 변동했다. 월 1만원 이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31.7%→30.8%→34%→31.6% 였다.
내연기관차 판매 중지 시점을 묻는 질문에 2035년이라는 응답이 16.8%→22.5%→34.5%로 가장 높았다. 2040년이라는 응답도 20.7%→21%→24.6%로 뒤를 이었다. 반면 2030년 중단하라는 답변은 37%에서 21%로 줄었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최우선 도입할 정책으로 ‘생산 단계에서 재사용과 재활용이 불가능한 포장재 사용 금지 정책’이 35.7%→34.2%→43.9%로 가장 높았다. ‘생산단계에서 재생원료 사용 의무비율을 도입하는 정책’이 18%→19.7%→20.6%였다. 반면 플라스틱 폐기물 부담금을 올리는 정책은 5.6%→4.9%→4.4%로 줄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지불 가능한 폐기물 부담금 인상 정도에 대해 마지막 설문조사에서 플라스틱 최종 제품 생산자에게 150원/㎏인 폐기물 부담금을 300원으로 올려도 된다는 응답이 28.8%, 200원이란 답변이 24.7% 였다. 국내 1회용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금지하는데 찬성한다는 의견도 4차 조사에서 93.9%까지 높아졌다.
곳곳에 ‘모순되는 답변들’…탄중위가 극복할 쟁점들 여전히 남았다
하지만 시민들도 현재 삶이 가져다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기는 어려워보였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비용 부담과 불편 감수를 위해 ‘나와 내 가족이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은 31.8%→33.9%→35.8%로 높아졌지만 동시에 ‘현재 삶의 질 수준에서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은 차수와 상관없이 45%로 동일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 ‘현재 삶의 질이 낮아지더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응답이 17.1%→17.2%→15.4%로 줄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의존한 기존의 문명을 넘어서는 도전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지만 삶의 질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의 책임이 4차 설문조사 결과 각각 88%, 65%로 크다고 답변했지만, 정작 해결 방법으로는 구조적 문제 해결 방법보다는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육류 소비 정책 중 우선 해야 하는 정책으로는 육류 소비를 줄이도록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36.7%→37.1%→49.9%로 가장 높았다. 저탄소 단백질 식품 개발 지원은 34.2%→32.2%→26.9%로 줄었고,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비용 지불(육류세)은 14%→14%→9%로 줄었다. 저렴한 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산업·유통 구조 등을 개선하기보다는 개인의 실천을 강조한 답변이다.
특히 석탄화력발전소를 둘러싼 모순되거나 비논리적인 답변도 눈에 띈다. 지난달 초 탄중위가 발표한 ‘탄소중립시나리오’ 3개 안 중 1·2안은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유지해 2050년까지 국내 탄소중립을 이루지 못하고, 3안은 석탄·가스 발전을 모두 중단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71%까지 끌어올려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방안이다. 탄중위는 지난달 7일 시민 500여명이 참여하는 탄소중립시민회의를 출범시켜 두달간의 학습·숙의 과정 뒤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때문에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시점과 관련한 시민 수용성이 이번 설문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다. 윤순진 민간위원장도 지난달 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석탄을 유지하면 국내에서 탄소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조림 사업이나 기업의 배출권거래제을 통해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석탄이 가장 온실가스 배출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앞서 학습했지만,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의 적당한 폐쇄 시기’로 2050년을 가장 많이 꼽았다. 2050년이라고 답한 비율이 19.4%(2차)→21.2%(3차)→30.8%(4차)로 학습을 할 수록 높아졌다. 올해 7월 가동을 시작한 신서천화력발전소가 30년 수명을 다 채우고 멈추는 시점이 2051년이다. 반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위해서 국제사회가 권고하듯, 2030년 이전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는 응답 비율은 35.2%(2차)→23%(4차)로 줄었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할 지점으로 석탄발전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고민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꼽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2050년 탄소중립보다 더 앞서 탄소중립을 해야 한다는 응답비율도 51.7%(1차)→57.2%(2차)→52.8%(3차)→55.2%(4차)로 높아졌다.
이처럼 ‘탈석탄은 늦게, 탄소중립은 이르게’라는, 답변의 정합성이 맞지 않는 결론이 나오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때문에 숙의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장도 “2050년 이전 탄소중립이 필요하다면서 2050년 탈석탄을 이야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성립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숙의 기간이 너무 짧았다. 애초에 설계를 잘못했기 때문에 숙의 가치가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또 시민들은 석탄·석유·원자력 등 에너지원 중 재생에너지를 가장 선호한다(복수응답·94%)고 했지만, 살고 있는 지역에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건설할 경우 그 마음이 흔들렸다. 기본적으로 찬성 비율이 80~90%로 높았다. 그러나 학습할수록 태양광은 11.4%(2차)→8.2%(4차)로 반대 여론도 점차 낮아졌지만, 풍력발전과 수소차 충전소 건설의 경우 반대가 소폭이지만 늘어나는 이외의 결론이 나왔다. 풍력발전은 11.8%(2차)→14.3%(4차)로 늘었고, 수소차 충전소 건설도 4.4%(2차)→8.4%(4차)로 반대가 늘었다. 탄중위가 발표한 3개의 시나리오 모두 재생에너지 비율이 60% 이상으로 높은데, 정작 ‘내 마을에 재생에너지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학습을 할수록 높아진 것은 주목할 지점이다.
탄중위 “학습 효과 반영”…이미 알던 쟁점 다시 확인했을 뿐이라는 지적도
탄중위는 “조사 차수가 이어질수록 ‘모름’ 응답이 줄었다”라며 학습·효과가 설문에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50대 한 참여시민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나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의 책임이 중요한데, 정작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하고 활동이 마무리 됐다”는 점은 아쉬워했다.
1인당 50만원씩 시민 참가비가 2500만원, 학습 자료 제작과 온라인토론회를 포함하면 더 많은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번 설문조사가 남긴 것은 기존의 간극을 재확인한 정도였다는 아쉬움도 있다.
재생에너지, 대중교통 인프라 확대, 노후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신규석탄발전소 중단, 탄소세 도입, 그린수소 확대 등은 대체로 찬성한다는 답변이 85% 이상으로 높았지만 전기요금 인상 74%, 단계적 탈원전 76%, 송전선로 확대 70% 등 현재도 논란인 쟁점은 상대적으로 찬성 응답이 낮게 나왔다.
이러한 결론에 한 탄중위원은 “시민들이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는지 중요하기 때문에 의미있는 작업이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 청년기후활동가는 “탄중위의 결론을 강화하려 시민들로부터 형식적인 의견수렴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 않냐. 이미 사회적으로 간극을 확인한 정의로운 전환, 탈석탄과 탈원전 등의 쟁점을 탄중위가 또 확인할 것이 아니라 해법을 찾기 위해 주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 인식이 증가했으나 일부 설문조사 결과는 정합성이 떨어져 탄중위 단기간 숙의 설계에 따른 한계가 드러났다”며 “설문조사 내용을 분석하되 정부의 탄소중립 실현 의지를 적극 반영해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우리 김민제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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