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 노동자의 임신은 죄인가

한겨레 2021. 9.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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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노동탄압 연쇄기고 _3

[왜냐면]
최유경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수석부지회장

노동조합에 상담을 요청한 제빵기사는 임신한 상태였다. 그는 “회사가 업무량을 줄여주기는커녕, 임산부는 연장근무를 할 수 없다는 법을 핑계로 줄어든 시간 내에 기존 물량을 다 만들라고 한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만 않으면 다 괜찮은 거냐”며 울분을 토했다. 회사가 임신 노동자에게 업무량은 그대로 둔 채 노동시간만 줄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기사는 임신 6주차에 담당 관리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관리자는 현재 근무하는 매장의 생산물량이 많은데다 9시간 근무를 하는 곳이니, 8시간만 근무할 수 있는 매장으로 이동시켜주겠다고 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매장 이동이 안 되면 복수기사(보조근무자)로 일할 수 없는지 묻자 관리자는 “점주들이 임신한 기사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갈 곳이 없을 것이다. 거주지역에 오픈 매장이나 행사 매장이 없으면 출퇴근이 2~3시간 이상 걸리는 먼 매장으로 일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기사는 일하던 매장에서 기존 물량을 그대로 생산하는 ‘단축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무거워진 몸으로 말이다.

더 기가 막히는 건 그가 기존 매장에서 근무하기로 한 뒤 관리자가 ‘(유산 가능성이 있으니) 본인 의지대로 근무를 한다’는 동의서를 받아갔다는 사실이다. 기사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회사에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런 동의서를 미리 받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왜 작성해야 하냐”고 물었다. 관리자는 “어떤 기사가 근무 중 유산을 해서 문제가 생긴 사례가 있다. 그래서 받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기사는 “각서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 너무 불쾌했다”고 덧붙였다. 노조에서 해당 서류를 요청하자, 회사 쪽은 그럴 의무가 없다며 지금껏 거부하고 있다.

최근 임신한 기사가 유산한 일도 있었다. 기사는 관리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유산휴가를 신청했다. 회사는 주휴 하루를 붙여 모두 6일의 유산휴가를 줬다. 몸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기사는 연차 등을 활용해 추가 휴가를 요청했지만, 일정 변경이 가능한지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처럼 임신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처음 듣는 이야기는 축하와 격려가 아니다. 인력이 없어 일정 변경이 어렵고 당황스럽다는 관리자의 말이다. 유산 소식을 전하며 휴가를 요청하는 기사들이 듣는 것 역시 따뜻한 위로가 아닌, 일정 변경이 어렵다는 관리자들의 볼멘소리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바란 게 아니다. 임신한 제빵·카페 기사가 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협력사 시절 제빵·카페 기사들은 만삭이 다 되더라도 출근을 해야 했다. 온종일 서서 근무하는 여건상 유산의 위험이 큰데도 자신이 갖고 있는 휴가마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유산하더라도 몸을 제대로 추스를 시간 없이 복직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3년 전 노조를 만들고 모성보호를 위해 회사와 수차례 대화와 투쟁을 이어갔다. 그 결과 협력사 시절 보호받지 못해 유산한 기사들에게 회사 임원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런데도 3년이 지난 지금 파리바게뜨 노동 현장은 나아진 게 없다. 재발 방지를 약속한 회사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현장의 임신 노동자가 받는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현장 관리자들은 모성보호에 대해 알지 못하며, 제대로 된 답변을 주지 않는다. 임신한 기사가 임산부 단축 근무를 신청하자 오히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거냐고 되묻는 관리자가 부지기수다. 회사는 노무교육에 모성보호 관련 내용을 포함해 진행하고 있다고 변명했지만, 이는 의무교육이 아니며 그마저도 지금은 코로나19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임신 노동자에 대한 보호 약속도 휴지 조각으로 만든 에스피씨(SPC) 파리바게뜨가 정당, 시민단체, 노동단체들과 맺은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지키려고 노력할 리 만무하다. 모성보호 약속도 지키지 않고, 사회적 합의도 이행하지 않는 에스피씨 파리바게뜨에서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는 제빵·카페 기사한테 최후의 보루다. 회사의 민주노조 탄압과 차별에도 질기게 버티며 투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에스피씨 파리바게뜨를 근로기준법만이라도 지켜지는 정상적인 기업으로 빚어내기 위해 오늘도 새벽 6시 매장 문을 열고 앞치마를 두른 채 일하는 현장에서, 또 천막에서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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