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법률가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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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전 특검이 화천대유에 고용된 것은 2015년이다. 화천대유는 직원 16명의 지역 부동산 회사다. 그때는 더 작았을 것이다. 그는 특수부 검사에게 ‘형님’으로 통했다. 대검 중수부장과 고검장을 지냈다. 퇴직 후 몸담을 곳이 아니었다. 그는 “알고 지내던 회사 대표의 권유로 갔다”고 했다. 회사 대표는 기자였다. 딸까지 같은 회사에 집어넣고 아파트 분양을 받게 한 걸 보면 단지 인연 때문만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특검으로 변신해 대통령을 탄핵에 몰아넣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았다. 로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법률을 가르쳤다. 청렴한 척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부동산 개발 업체에 고용돼 보수를 받았다. 그는 대법관 시절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무죄 판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지사와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화천대유의 관계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친분이 있던 회사 대표의 권유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돈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법률가는 자존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직업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물리적 힘으로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김재규 판결이 이의를 제기한 대법관을 입에서 침이 질질 흐를 정도로 고문했고, 판검사 로비 의혹에 얽힌 변호사들을 담요로 감아 2층 계단에서 발로 굴렸다(원로법학자 이시윤의 소송야사). 5공화국 초 대법원장을 지낸 이영섭은 “다시 태어나도 법관의 길은 안 간다”고 했다. 중요하기 때문에 도전이 지독하고, 그래서 더 지키기 어려운 게 법률가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권력의 물리적 힘에 눌리는 법조인은 이제 없다. 소위 ‘사법 농단’ 여파로 조직의 통제도 사라졌고,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로 승진의 압박에서도 벗어났다. 권력 비리와 관련된 중요 사건 재판을 맡은 판사가 1년 넘게 재판을 열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여가를 보장하는 ‘워라밸’ 문화도 사법부에 정착되고 있다고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전직 대법관, 검찰총장, 특검, 검사장이 지역 부동산 회사에 들어가 전관(前官)의 힘과 법 지식을 팔았다. 현직 국회의원인 민정수석 출신 법조인은 자식을 그 회사에 집어넣어 성과금 50억원을 챙기게 했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두고 대립한 두 법조인이 몇 년 후 그 피고인에게 함께 고용돼 보수를 받았다. 최고에서 말단까지 눈이 뒤집혀 일확천금에 뛰어들었다. 법률가의 자존심이 이렇게 가벼워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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