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60억 들인 출판전산망, 빈 껍데기 되나
60억원을 들여 만든 빈 껍데기를 보는 느낌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문화협회가 대립하다 결국 관(官) 주도로 29일 개통한 출판유통통합전산망(통전망) 이야기다.
‘투명한 선진 유통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개발했다는데, 체험해보니 정작 저자는 자기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없고 독자는 무슨 책이 많이 팔리는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개발과 운영을 주도한 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 측은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날 현재 교보문고에서 유통 중인 국내 종이책은 약 56만종. 그 가운데 통전망에 등록된 책은 3만종뿐이다. 개별 출판사가 직접 도서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인데,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진흥원이 지난 3년 동안 개별 출판사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이날 한 중견 출판사 대표는 “통전망 시스템이 얼마나 안정적인지 못 믿겠다. 그래서 서점마다 신간 보도자료를 보내고, 진흥원 시스템에도 추가로 정보를 입력해야 해 일만 늘어났다”고 했다.
투명한 인세 지급도 해결하기 어렵다. 출판사가 책을 통전망에 등록하지 않으면 집계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직접 판매량을 확인하는 시스템도 없다. 진흥원은 “향후 출판사들이 동의하면 저자가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같은 해명을 했다.
일반 독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베스트셀러’ ‘추천 도서’ 등의 서비스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통전망에 등록된 책 중 판매량 상위 50개 도서를 ‘가나다’ 순서로 보여준다. 추천 도서를 시도해보니 역사·고고학 분야에 과학책이 들어 있다. 진흥원 관계자는 “민간 영역처럼 판매량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주요 대형 서점이 판매량 기준으로 베스트셀러를 공개하는 마당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민간 기구인 출판문화협회는 진흥원의 통전망이 문제가 많다며 지난 8월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을 만들었다. 민관이 전산망 운영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면서 벌어지는 촌극이다.
진흥원은 내년에 통전망 개편을 위해 예산 22억원을 추가로 배정받겠다고 한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됐다. 민과 관이 머리를 맞대 진정한 ‘통합’ 전산망을 구축할 길부터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금만 더 축내는 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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