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겨울 베란다에 튤립을 키우며 배운 것들

한은형 소설가 2021. 9.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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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수록 강하고 아름답게 큰다'기에 심었던 튤립 구근 19개
서툰 손길에도 쑥쑥 솟던 연두색 꽃대, 현악기 선율같던 새싹들
못다핀 꽃 안쓰러워도.. 추위 속 기다림의 기억 싱싱하게 남았네

튤립을 심은 적이 있다. 추울수록 강하고 아름답게 큰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강하게 큰다’고 했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강하고 아름답게 큰다’는 말은 달랐다. 강하면서 아름답게 크는 게 뭘지 궁금해졌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직접 하기로 했다. ‘강하고 아름답게 큰다’라는 말은 내게 뿌려졌다가 그렇게 발아했다. 여기까지는 아름다운 이야기.

지금부터는 현실의 이야기다. 튤립을 심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일단 구근을 사야 했다. 그런데 어떤 구근을 사야 하지? 구근 식물에 대한 책을 사고, 튤립을 심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 읽었다. 저마다 말이 달라서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구근을 심는 시기부터 문제였다. 누군가는 12월 전이 좋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첫 서리가 내리기 전에 하라고 했다. 구근 껍질을 벗길 것인지, 락스에 담글 것인지 말 것인지도 문제였다. 껍질을 벗기지 않거나 락스에 담그지 않으면 구근에 있을지도 모를 곰팡이를 제거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어떤 흙에 심을지도, 몇 센티미터의 간격으로 심을지도, 어느 정도의 깊이로 구근을 심을지도 문제였다. 문제가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 문제였다.

/일러스트=이철원

튤립의 구근은 마늘 한 알보다 크고 양파보다는 작았다. 긴 화분에 두 줄로 19개의 구근을 심었다. 20구를 샀는데 하나가 썩어서 19구 되었다. 가브리엘라, 델타스톰, 망고참, 바르셀로나 뷰티, 캔디프린스, 이렇게 다섯 가지 종류를 작년 12월 12일에 심었다. 튤립을 심은 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베란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튤립 화분이 베란다에 있었기 때문이다. 땅을 뚫고 올라오려면 한참이 걸린다는 걸 알았지만 매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추워지길 기다렸다. 추위가 튤립을 강하고 아름답게 키운다 했으니까. 베란다 창문을 열어두고서 튤립이 추위를 이겨내길, 그래서 다부져지길 응원했다.

겨울이니 당연히 추워졌는데, 추위가 지속되면서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추울수록 튤립이 잘 자란다고 했지만 이렇게 추워도 되나 싶었다. 적당한 추위가 좋은 거지 지나친 추위도 좋은 걸까? 튤립이 얼어 죽을까 걱정되어서 실내에 들여다 놓기도 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꽃대는 올라오지 않았다. 기다리면서 생각했다. 추위가 부족했나? 아니면 추위가 지나쳤나? 아니면 흙이 부적절한가? 구근이 썩었나? 얕게 심었나? 나는 튤립에 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모두 다 잘못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다 싹이 났다. 12월 말이었다. 망고참과 캔디프린스만 그랬다. 2월 중순이 되자 거의 모든 튤립의 꽃대가 올라왔다. 지금은 이렇게 건조하게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신선했다. 날마다 연두색 싹은 쑥쑥 자랐고, 싹은 어느새 줄기로 바뀌었다. 연두색 싹은 점차 반질반질해졌고, 키가 자랐으며, 색이 짙어지고, 튼튼해졌다. 키가 다르게 들쑥날쑥 자란 튤립의 줄기는 음계처럼 보였다. 튤립의 줄기가 악보를 이루고 있는 느낌! 자신이 음악가라면 ‘새싹을 위한 행진곡’을 써서 기꺼이 자연에 헌정할 것이라던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말이 떠올랐다. 열렬한 정원사이기도 했던 그는 새싹에 대해 이렇게 썼다. 여린 풀 잎사귀들은 현을 튕겨대며 온갖 선율을 만들어내고, 그 하모니 속에서 전진하며 웅장한 열병식을 거행한다고.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하면서.

베란다 새싹들의 행진은 오래가지 못했다. 꽃이 제대로 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이 피기는 했지만 폈다고 하기는 뭐한 빈약하고도 불완전한, 꽃이 못 된 꽃이었다. 안쓰럽게도 더 피지 못하고 녹아버렸다. 정말 스르르 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거의 열 송이가 그렇게 힘없이 사멸을 겪는 걸 보며 튤립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렸다. 추울수록 강하고 아름다워진다는 ‘강철로 된 무지개’ 같은 것은 내 베란다에 없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모두 비실대다가 가버렸다. 꽃을 거의 피우지 못한 튤립의 잔해들을 정리하면서 다시는 이런 걸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은 이렇게 가혹했다.

그렇다고 모두 나빴던 것은 아니다. 튤립이 자라는 동안 품었던 기다림의 감각은 남아 있다. 기다림 자체가 싱싱했다. 그리고 시들지 않고 남아 아직도 생생하게 피어 있다. 튤립을 부르르 떨게 하던 겨울 아침의 결기와 함께. 생생한 것만큼 아름답고 강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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