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이제는 대학원 시대를 준비해야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2021. 9.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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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얼마나 될까? 지난 1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교육지표 2021’을 발표했다. 교육부가 은근히 자랑하는 것처럼 한국의 25~64세 인구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약 5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그런데 수준별 고등교육 구성비를 보면 따져볼 점이 좀 있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먼저, 우리나라 고등교육 이수율은 2년제 전문대(14%)와 4년제 대학(32%), 그리고 대학원 과정(4%)을 합한 개념이다. 한국은 일본, 캐나다 등과 함께 2~3년 단기 전문대 졸업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반면 독일,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미국 등은 우리보다 대학원 졸업자가 훨씬 많다. 만일 전문대를 제외하고 4년제 대학학위와 석사학위 취득자만을 합하여 비교하면 양상은 많이 달라진다. 한국이 36%인 데 반해 스위스 43%, 네덜란드 40%, 룩셈부르크 44%, 아일랜드 43%, 핀란드 37%, 영국 38%, 미국 37% 등으로 우리보다 높다.

유럽의 경우 전통적으로 학부가 아니라 석사학위를 기준으로 고등교육 프로그램이 짜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전체 인구 가운데 석사학위 소지자들이 많다. 예컨대 핀란드는 4년제 학위소지자가 20%인 반면, 석사 소지자는 17%에 달한다. 룩셈부르크는 학부졸업자가 16%인 반면, 석사학위자는 28%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이수율이 상당부분 전문대 졸업자로 채워져 있는 반면 석사학위 이상 졸업자가 적은 구조는 결코 첨단지식경제와 잘 조응하는 학위생산구조라고 말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즉 그 수준과 질에 있어서 약간은 과대포장된 셈이다.

다행히 지난 10년 동안 대학원 입학정원은 상당히 늘어났다. 1980년 약 3만명 수준이던 석사 정원은 이후 점점 증가하여 1995년부터는 10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4년제 대학 입학정원이 31만명 정도이니 학부 졸업생의 3분의 1가량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셈이다. 양적으로 상당히 증가된 추세이다. 앞으로 산업 4.0, 인공지능, 문화산업, 생명공학, 상시적 직업전환 등의 키워드에 비추어 본다면 대학원의 규모는 더 늘어나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양적 팽창에 비해 내용의 부실은 처참하다. 또한 규모와 비중에서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대학원에는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일반대학원과 전문 직업역량 향상을 위한 전문대학원 혹은 특수대학원이 있다. 일반대학원 정원은 전체의 40% 정도이며 나머지는 직업 전문역량 개발을 위한 기술·실무에 특화된 대학원들이다. 후자에 입학하는 연령도 33세 이상이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이 중 특수대학원의 정체성과 구조적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교육과정의 부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정원 구성비에서 STEM 분야, 즉 공학·자연·의약계열 등을 합한 석사 입학정원이 전체의 17%에 불과하다. 차제에 ‘특수대학원’이라는 명칭도 바뀔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 절반이 특수대학원생이라고 본다면 ‘특수’라는 명칭은 더 이상 분류명칭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일반대학원의 부실과 왜곡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질 낮은 박사를 양산하는 대학들이 산재해 있고, 영문초록 하나 스스로 작성하지 못하고 표절하는 박사들이 넘쳐난다. 학술학위와 전문학위가 구분되지 않고, 연구자 프로그램과 전문역량 프로그램이 혼재되어 있다.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도 학사운영은 학부 조직에 예속되어 있다. 학부가 대학원을 쥐고 흔든다.

이제 고등교육정책의 중심이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이동해야 할 시기가 왔는지 모른다. 학문·기술 분야 등 더 이상 학사학위로 전문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분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공지능, 데이터 사이언스, 건축,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제 대학원은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학부에서는 교양과 지성을 교육받고 전문성은 대학원에서 수련하는 분업체계가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재직자들이 대학원을 통해 평생학습에 참여하는 경향성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고등교육정책에서 대학원이 학부에 더부살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온전히 독립적으로 진화하는 새로운 체제가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유럽의 경우 박사과정을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며 다니는 것처럼 선발과 재정지원을 결합하는 방식도 참조할 만하다. BK21사업을 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정부는 내년부터 전문대학에서도 첨단·전문기술 석사과정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반가운 일이다. 전문대가 응용학문 분야에서 대학원까지 운영하는 것은 유럽 등에서는 일반화된 일이다. 고등교육 체제 개편의 작은 불씨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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