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테니스 쾌거'에 냉담한 대중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1. 9. 30.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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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변호사

지난 일요일(26일) 권순우 선수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오픈에서 한국 테니스선수로는 두 번째로 ATP투어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형택이 한국 최초로 투어 우승을 차지한 지 18년 만의 경사였다. 프로테니스협회 정규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남자 ATP랭킹 100위권에 아시아인이 현재 단 3명 존재한다는 사실로 가늠해볼 수 있다. 테니스는 신사·귀족스포츠라는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다른 어떤 종목보다 제1세계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테니스 팬으로 볼 때 이 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냉담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한국에서 테니스는 세팍타크로만큼은 아니지만 명백히 '소수자 운동'이기 때문이다. 중년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운동하세요?"라는 질문은 언제 함께 골프 칠까라는 질문으로 오염된 지 오래다. 모든 것의 척도가 된 유튜브 기준으로 볼 때도 인기 채널의 양과 질에서 테니스는 골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테니스가 항상 비주류였던 것은 아니다. 86 아시안게임 단식과 복식 모두에서 우승한 유진선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많지 않지만 그 시절 테니스는 취미운동의 왕좌에 앉았었다. 1980년대는 건축법에 일정규모의 아파트 단지에 체육시설을 강제한 시기고 지금도 서울에 남아 있는 테니스장은 그 법령에 따라 지어진 것이 많다. 인기 스포츠였던 테니스의 쇠락은 주차면적이 부족해진 아파트 단지에서 테니스코트를 없애자는 입주민들의 슬픈 투표에서도 드러난다.

테니스 팬으로서 올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몇 주 전 US오픈에서 노바크 조코비치가 눈물을 흘린 벤치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최근 몇 년 동안 조코비치는 천하무적이었다. 올 들어선 호주오픈, 롤랑가로스, 윔블던에서 모두 우승했고 이제 마지막 US오픈을 차지하면 52년 전 호주의 로드 레이버가 달성한 캘린더 그랜드슬램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문턱에서 좌절했다.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테니스를 구사하는, 로봇의 완벽함 자체였던 조코비치가 패배를 앞두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는 장면은 실로 인간적인 것이었다.

그 눈물 위로 일견 냉담하고 귀족적인 모습으로 오인되는 테니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사실 테니스야말로 가장 감정적인 스포츠 중 하나라는 깨달음은 몇 경기만 관람해봐도 쉽게 깨닫게 된다.

많은 프로 테니스선수가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은 기량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 '멘탈'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욕설을 하거나 라켓을 집어던지고 부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애먼 심판과 싸우는 경우도 많다. 대등하게 펼쳐지던 경기가 미세한 흐름의 변화로 급격히 기우는 경우가 많은 것도 결국 멘탈의 문제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말하지 못한 이야기'는 ATP투어에서 여섯 번 우승한 미국 선수 마디 피시가 겪은 불안 장애에 대해 말한다. 세계 랭킹 1위였던 오사카 나오미는 올해 우울증을 고백하면서 경기 직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기자회견을 거부한 대가로 롤랑가로스에서 벌금 1600만원을 냈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테니스를 가리켜 "강박적이고 우울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가장 고독한 경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테니스는 섬세한 심리스포츠다. 아마추어 수준에선 어떤가. 내가 올 한해 동호회에서 저지른 더블폴트의 숫자와 팀 동료에 대한 미안함은 차곡차곡 누적되지만 주눅 든 마음은 서브 실력을 오히려 퇴보시킨다. 이 섬세한 스포츠, 나 자신과 동료에게 누적적으로 미안한 게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나가는 이유는 무언가. 글쎄 그 재미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가끔 터지는 포핸드가 상대방 와이드 깊숙한 곳에 꽂히는 그 쾌감을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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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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