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02] 수련(睡蓮)의 공간
보통 관상(觀賞)용으로 만드는 연못. 강처럼 흐르지는 않고 호수보다는 작은 물의 영역이다. 소금쟁이가 스케이트를 타는 수면 가장자리로 수련이 잎을 띄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독일 동화 ‘개구리 왕자’의 왕관 쓰고 앉아있는 개구리 모습이 연상된다. 물고기를 위한 그늘도 만들어주는 수련의 잎은 수면에 바짝 붙어 늘 물에 젖어있다. 그래서 햇빛이 비칠 때 연못 표면뿐 아니라 수련 잎의 물방울도 반사되어 빛난다. 수련이 떠 있는 연못 색채와 패턴은 계속 바뀐다. 빛과 구름, 바람과 물결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즐기며 몰입하는 경험은 연못을 대표적 명상 장소로 만든다<사진 1>. 수련의 풍경에서 많은 그림과 시(詩)가 탄생했다. 30여 년간 자신의 정원을 가꾸며 연못 풍경을 그림으로 옮겼던 모네의 ‘수련’ 작품이 대표적이다. 모네의 그림이 우리 시선을 멈추고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은 이런 연못의 정취와 자연의 빛으로 초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여름 미국 코네티컷주(州)의 어느 연못에 한국인 예술가 한해미의 공공 미술 작품 ‘릴리 프로젝트(The Lily Project)’가 설치되었다. 여러 색으로 칠한 원반은 연못 표면에 떠서 환한 즐거움을 준다<사진>. 수련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듯 보인다. 커다란 원반 몇 개에 들어가서는 휴식이나 명상도 할 수 있다. 외부 관상뿐 아니라 연못 속에서 그 일부가 되는 경험이다. 이 작품 위에 앉아 연못에 떠있는 우리는 개구리도 되고, 소금쟁이도 된다.
꿈, 결백, 신비 등의 꽃말을 가진 수련에는 빨강, 노랑, 하양, 분홍 꽃이 핀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학명 님페아(Nymphaea)는 ‘물의 요정’이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위터 릴리(Walter Lily)’라고 한다. 하지만 한자로는 자거나 늘어진다는 뜻의 잠잘 수(睡)를 쓴다. 수련이 낮에 피었다가 밤에는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오늘 9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가을이 깊어지면 수련 꽃은 저물고 단풍에 그 자리를 내준다. 그러고 내년 봄을 기다리면서 베스트 프렌드인 개구리도 함께 긴 동면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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