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연일 압박하는데… 미국산 돼지고기 놓고 또 갈라진 대만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2021. 9. 2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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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충돌 격화
행정원장 “국민당, 친미 주장하며 미국산 수입에 반대하는건 反美”
中의 위협 와중에 한목소리 못내
민진·국민 의원들 몸싸움 - 대만 집권 민진당 소속 쑤전창(가운데 마이크 든 사람) 행정원장이 28일 대만 입법원(의회)에서 시정 보고를 하는 도중 여야 의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28일 오전 대만 입법원(의회). 집권 민진당 소속 쑤전창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이 시정(施政) 보고를 하기 위해 입장하자 야당인 국민당 의원들이 일제히 쑤 원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야당은 민진당 정부가 코로나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다며 쑤 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쑤 원장이 봉변을 당할 위험에 처하자 여당 의원들이 그를 보호하려 에워쌌고, 순식간에 입법원은 여야 의원들이 뒤엉키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국민당 소속 천위전 의원은 오토바이를 탈 때 끼는 검은 장갑까지 끼고 몸싸움을 벌였다. 쑤 원장은 민진당 의원들의 보호 속에서 가까스로 마이크를 잡았지만 22초 만에 연설을 마쳐야 했다.

중국이 연일 대만을 강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대만 정치권의 내분(內紛)이 격화되고 있다. 적전 분열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등 여론이 첨예하게 갈린 주요 이슈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삼고 있다. 여야 모두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서로의 정치적 이익 때문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제외하고 현재 대만 정치권의 최대 현안은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과 제4 원자력 발전소 건설 재개 여부다. 이를 놓고 12월 18일 국민투표도 실시한다. 대만에서는 유권자 1.5%(약 28만명)의 동의를 얻으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

/그래프

대만 정부는 지난해 사료 첨가제(락토파민)가 들어간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허용 방침을 밝혔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만 전역에서 발생했다. 야당인 국민당은 수입에 반대했다.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원한 민진당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수입을 강행하자 국민당은 지지자를 결집해 수입 찬반을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2014년 완공 직전 건설이 중단된 제4 원전을 두고도 양측은 대립 중이다. 탈원전 입장을 가진 민진당은 건설에 반대하지만 국민당은 건설 재개에 찬성하고 있다.

지난 25일 국민당 주석에 당선된 주리룬 주석은 12월 국민투표에 대해 “쑤전창 내각을 무너뜨리는 투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투표를 통해 국론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여당을 공격할 무기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에 쑤전창 원장은 28일 “주리룬 국민당 주석은 친미(親美)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미국 돼지고기에는 반대하는 반미(反美)”라며 “그는 대만에 가장 덜 우호적인 외부 세력(중국)과 화합을 주장한다”고 했다. 그러자 주 주석은 “나는 미국산 소고기도 먹고 미국산 돼지고기도 먹는다. 락토파민 돼지만 먹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쑤 원장이야 말로 반미”라고 했다. 사료 첨가제 돼지 논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첨가제를 안 쓴 미국 돼지의 수입까지 막아 미국의 이익을 해쳤다는 취지다.

양쪽의 충돌이 격해지는 것은 올 12월 국민투표와 내년 지방선거 결과가 정국 주도권을 결정하고, 2024년 치러지는 총통 선거 및 입법원 의원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총통은 2019년 홍콩 내 반중 시위를 계기로 대만에서도 굳어진 반중 여론 덕에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코로나 국면에서 ‘대만식 방역’을 믿다가 백신 확보가 늦어지면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국민당 역시 연거푸 두 차례 총통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줄어든 지지층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당은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교류를 강조해왔지만 2019년 홍콩 반중 시위 이후 대만 유권자들의 반중 여론이 강해지면서 중국 문제 대신 국내 문제에 올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는 와중에 중국이 대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서 대만의 외부 환경은 어느 때보다 불안한 상황이다. 올 들어 중국은 대만 인근에서 대규모 상륙 훈련, 민간 선박을 동원한 군사장비 수송 훈련을 실시했다. 중국군은 수시로 대만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고 있다. 입법원에서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싸운 28일에도 중국군 군용기 2대가 대만 서남부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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