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가을 운동회

김환기 입력 2021. 9. 2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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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 연신 터지는 출발신호에 땅이 흔들린다. 차일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시인 이성교는 어릴 적 가을 운동회의 추억을 이렇게 표현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가을 운동회의 대미는 계주가 장식했다.

가을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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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 연신 터지는 출발신호에 땅이 흔들린다. 차일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 …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시인 이성교는 어릴 적 가을 운동회의 추억을 이렇게 표현했다. 현장의 분위기를 풍경화처럼 잘 그려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는 누구에게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가족 단위 여가활동을 즐길 여유가 없던 1970∼80년대 초등학생들에게는 더없이 기다려지던 즐길 거리였다. 달리기와 기마전, 공굴리기, 이어달리기, 매스게임 등이 주 종목이었다.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기를 잘해 공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라도 타면 어깨가 으쓱했다. 거기에 어머니가 준비한 김밥과 삶은 달걀, 사이다, 고기 반찬이 그득한 점심 식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왜 즐겁지 아니하랴.

박 터트리기는 가을 운동회의 상징 같은 경기였다. 아이들이 던지는 오자미에 바구니가 터지면 오색 색종이가 꽃비처럼 흙 운동장으로 흩어져 내렸다. 가을 운동회의 대미는 계주가 장식했다. 학년별 대표가 바통을 주고받으며 뛰다 보니 순서가 자주 뒤바뀐다. 바통을 떨어트리는 실수도 발생해 보는 이들은 마음을 졸이게 된다. 가을 운동회는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니었다. 학부모와 마을 주민도 함께 즐기는 한마당 잔치였다. 시골 학교에선 추석 다음 날 운동회를 열었다. 고향을 찾은 동문들은 동창회를 하고 출세한 동문이 찬조금을 내놓기도 했다.

일제 시기에 정착된 가을 운동회는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1975년 정부가 비리가 끊이지 않던 행사 경비 징수를 금지하자 가을 운동회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1976년 가을 운동회의 부활을 지시하고 학교당 30만원씩 국비를 지원토록 해 오늘에 이른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가을 운동회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접촉 인원을 최소화하고자 경기를 여러 날에 걸쳐 학급별로 하는가 하면 VR(가상현실) 체험실에서도 진행된다. VR 운동회가 운동장에서 뛰고 달리는 것만 할 것인가. 코로나19가 너무 많은 인간의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다.

김환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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