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50억 퇴직금'과 청년세대의 좌절

김기동 2021. 9. 29.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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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핑주의' 中 2030세대 반향
집값 폭등·취업난 한국과 유사
곽상도 아들 청년 가슴에 비수
정치가 청년에 꿈과 희망 줘야

지난 4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흥미로운 글 하나가 올라왔다. ‘호기심 많은 여행가’라는 닉네임의 청년이 자신의 누워있는 사진과 함께 “탕핑(躺平)이 곧 정의이고 2년 동안 일자리를 갖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내용을 올렸다. ‘바닥에 눕는다’는 탕핑은 소유욕을 버리고 최소한의 생계만 유지하자는 의도로 시작됐다. 5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자전거 여행을 다니는 여유로운 삶을 소개했다. 그는 “경쟁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더 이상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 5가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포기한 5가지는 집, 자동차, 결혼, 아이, 소비다. ‘탕핑’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관련 경험담과 사진을 공유하며 중국 2030세대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성장우선주의’를 지향하는 중국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환구시보 등 관영매체를 통해 탕핑을 비판하는 논평까지 게재하고,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탕핑’을 검색 금지어로 지정했다. 중국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베이징과 선전시의 아파트 가격은 주민 평균 연봉의 50배를 훌쩍 넘겼다. 일본 도쿄의 1990년대 버블(평균 연봉의 18배)을 능가한다. 적은 월급에 고용불안 심리까지 겹치면서 중국의 올해 국가직 공무원 필기시험 응시자가 무려 16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 첨단기업을 중심으로 초고강도 노동을 뜻하는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노동) 논란까지 더해져 청년층의 공무원 선호 현상을 부채질했다.
김기동 논설위원
집을 못 구하니 결혼이 늦어지고, 아이 키우기도 힘든 상황이다. 출산율 저하에 다급해진 중국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폐지하면서까지 ‘세 자녀 정책’을 내놨지만 시큰둥하다.

우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의 ‘N포세대’와 절묘하게 오버랩된다. 다만, 중국의 탕핑이 소극적 사회운동이라면, 우리의 N포세대는 박탈감과 분노가 배어있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비관적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서 내집 마련·인간관계까지 버린 ‘5포세대’는 옛말이다. 꿈, 희망까지 접은 ‘7포세대’도 모자라 더 포기할 게 남아있을까 싶다.

청년들의 체감실업률은 25%를 넘는다. 정규직은 하늘의 별따기다. 어렵게 잡은 일자리조차 저임금,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이른바 ‘인국공 사태’에서 보듯 비정규직 제로에 매몰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10대 공기업에서 5만명 가까운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바뀌었다. 공기업 입사를 꿈꾸던 취업준비생에겐 날벼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강성노조와 과도한 노동경직성에 발목이 잡힌 민간기업도 신규 채용을 꺼리는 추세다.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된 청년들과 신혼부부들의 주거 사다리는 붕괴됐다. 서울에서 25평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월급을 꼬박 36년 모아야 한다는 시민단체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정부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공공주택은 찬밥신세다. 대통령까지 칭찬하던 경기 화성동탄의 임대주택만 봐도 그렇다. 보증금 7200만원, 월 임대료 27만원에도 9개월째 공실로 남아있다. 수요·공급은 물론 선호도·입지 등을 무시한 반시장 정책의 현주소다. 수도권 외곽을 전전하는 주거난민이 속출하고, 청년들은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로 발길을 돌린다.

이런 상황에서 ‘대장동 특혜 의혹’에서 드러난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 퇴직금’은 청년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6년차 회사원 입에서 나온 “정당한 노동의 대가”라는 말에 화가 치민다. 변변한 ‘부모 찬스’ 하나 없는 흙수저 청년들의 박탈감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도 정치는 선거철만 되면 푼돈 공약을 내뱉으며 ‘청년’을 부르짖는다. 청년은 미래다. 그런 그들에게 사다리마저 걷어차는 건 크나큰 국가적 손실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는데 가정을 꾸리고 집을 사라고 다그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청년들이 주식·코인에 빠져 ‘영끌’ ‘빚투’로 내몰린 데 대한 책임은 국가와 기성세대에 있다. 불평등·불공정에 분노한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게 정치의 책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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