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 극복한 갑상선 의사 "치료만큼 중요한 것은.."

조재구 고대구로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2021. 9. 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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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은 내가 안다" ⑧ 갑상선암 이겨낸 갑상선 수술 의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양진경

갑상선암이나 후두암 등 목에 생긴 암(癌)을 수술하는 필자는 이비인후과 중 두경부외과 교수다. 10년 전쯤 전공의들을 교육하기 위한 목 초음파 검사 과정에서 갑상선 혹을 처음 발견했다. 교육 삼아 내 목에 초음파를 댔는데, 거기서 혹이 보인 것이다. 교육을 지도하던 영상의학과 교수가 갑상선 혹이 꽤 커서 세포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갑상선 혹은 흔히 보이기에 조언을 무시했고 잊고 지냈다. 8개월 지난 그해 가을 건강검진에서 혹이 더 커졌다는 말에 세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암이었다.

갑상선 암을 수술하는 두경부외과 의사가 갑상선암 환자라니. ‘순한 암’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심적 충격이 컸다. 교과서에 적힌 가장 안 좋은 결과가 떠올랐고, 여러 합병증, 후유증이 모두 내게 일어날 것만 같았다.

갑상선을 전부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경험한 후유증은 내가 늘 환자들에게 말했던 “괜찮습니다. 곧 좋아질 겁니다”라고 한 것과 달랐다. 한 달을 시달렸다. 수술 부위가 부은 것이 이렇게 불편한 줄 몰랐다. 말하기도 삼키기도 힘들었다. 퇴원 후에는 칼슘이 떨어져 팔다리가 저린 증상이 2~3주간 지속됐다. 갑상선 수술 시 갑상선 옆에 붙어있는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부갑상선도 기능 저하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갑상선암 크기도 꽤 크고, 암이 갑상선 막을 뚫고 나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수술을 하고도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는다. 방사선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납으로 벽을 차단한 격리 병실에 2박 3일 입원해 요오드 치료를 받았다.

이제 모든 치료가 끝났구나, 한숨 돌려도 되겠다 싶은 순간, 경과 관찰을 위해 본 초음파 검사에서 목의 임파선이 커져 있었다. 갑상선암 전이가 생긴 것이다. 다시 한쪽 목의 임파선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갑상선암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암은 암이다.

병상에 누워서 그동안 내가 했던 수술이 이런 것이었구나 절감했다. 삶이 힘들고 생활을 어렵게 하는 수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집도의가 환자가 되어보니 불편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가장 나쁜 결말로 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자주 엄습했다. 환자가 안 됐으면 몰랐을 것이다.

갑상선암 환자가 갑상선암을 수술하는 의사로 돌아가면서 일상이 회복됐다. 바쁜 나날을 맞으면서 현재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암 치료에서 일상으로 복귀하는 일이 큰 치유 효과를 낸다는 것을 같은 암 환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요즘 환자들에게 치료가 끝나면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취미가 있고, 뭘 하든 시간을 잘 보내는 암 환자들이 정신적으로 덜 힘들어한다. 치료 결과도 좋은 경향이 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불안과 걱정을 해소하는데 큰 힘이 됐다. 친구들이 나를 가엾고 불쌍한 환자로 여기지 않고 그냥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 자기 연민에 빠지려는 나를 끌어올려 주었다. 암 환자 대부분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외래에 외롭게 혼자 다니는 암 환자보다 가족이나 친척, 친구와 오는 환자들 얼굴이 훨씬 밝고 긍정적이다.

많은 암환자가 지금도 열심히 치료받고,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환자를 옆에서 보는 가족 역시 힘들다. 그래도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이전과 똑같이 대해준다면 환자는 좀 더 건강하게 병을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 암 수술 의사가 암 환자가 되어 보니 알겠다. 결국 환자를 실제로 살리는 사람은 의사가 아닌 가족과 주변의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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