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에 취한 우리에게 '헝다 사태'가 주는 경고음 "기본에 충실하라" [박동흠의 생활 속 회계이야기]

박동흠 회계사 입력 2021. 9. 2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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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중국 헝다그룹의 파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불확실성에 휩싸였다. 헝다그룹의 부채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도 있고 전·후방 연관 산업과 자본시장에 연쇄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비관론도 들린다.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대출 비중이 커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장 국내 기업부터 부실화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일단 삼성전자처럼 갖고 있는 예금, 적금, 주식, 채권 등 금융자산이 갚아야 하는 차입 부채보다 월등히 많고 매년 안정적으로 영업이익을 창출하고 있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량 기업은 재무적 리스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앞으로 업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만 신경쓰면 된다.

금융자산이 갚아야 하는 차입 부채보다 많은 부자 기업이라도 사업이 쇠퇴기로 접어들어 영업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재무제표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당장은 이자와 배당수익 등으로 영업적자를 메울 수는 있다. 문제는 적자 규모가 더 커지게 되면 회사가 금융자산 원금을 깰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황이 나아지지 않거나 마진 압박이 심한 후방기업이라면 몇 년 내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으니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차입 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창업 초기거나 성장기에 진입한 기업들은 더욱 그렇다. 창업 초기에는 연구·개발 위주이고 기업의 수익모델이 설정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기업들은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차입보다는 투자를 받아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도산 가능성이 낮다. 동업자인 주주들만 리스크를 짊어지면 된다. 성장기에 진입한 기업들은 생산능력 확충을 위해 시설 투자를 해야 하니 차입 규모도 커지기 마련이다. 대개 외부 투자 유치나 기업 상장을 통해 사업자금을 확보하는데 이걸로 부족하면 기존 공장과 금융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최대한 대출을 받는다. 2차전지, 전기차, 로봇, 의료기기 등 관련 업종에 속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보면 대부분 차입금 비중이 상당하다. 재무구조가 좋지 않더라도 이익을 창출하는 능력만 갖췄다면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증가하는 매출액에 비례해 이익도 늘어날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갚아야 하는 차입 부채보다 금융자산 보유액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우량 기업인 SK하이닉스도 불과 5년 전에는 갚아야 하는 차입 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았지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급증하며 이듬해에 바로 차입 부채를 다 갚고도 4조원 이상 남을 만큼의 금융자산을 갖게 됐다.

기업이 보유한 금융자산보다 갚아야 하는 차입 부채가 훨씬 많은데 적자가 지속된다면 정말 주의해야 한다. 빚이 많기 때문에 열심히 벌어서 갚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적금을 깨고 주식이나 채권을 팔아도 차입 부채 상환이 어렵다. 그렇다고 회사의 매출, 영업이익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형자산을 매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천사 같은 투자자를 만나 사업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상 부실화를 피해 가기 어렵다.

헝다그룹 사태가 어쩌면 우리에게 경고음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유동성에 심취한 나머지 금융의 기본인 재무제표를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한 번 점검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어수선하고 불안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박동흠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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