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작가 "평범한 삶 통해 퀴어문화 과감하게 드러냈다"

전지현 2021. 9. 2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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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늘 아라리오뮤지엄 개인전 '벌키'
근육 키우는데 애쓰는 게이 모습
흙을 덧붙이는 소조 기법과 비슷
주짓수·씨름 등 스포츠 경기로
한국 퀴어아트 가능성 펼치기도
최하늘 `벌키(Bulky)`. [사진 제공 = 아라리오뮤지엄]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두 팔에 힘을 잔뜩 준 남자 조각상 '벌키(Bulky)'가 시선을 끌었다. 왜소하고 빈약한 몸 위로 근육 모양 메탈 갑옷을 덧붙여 강인한 전사로 벌크업(Bulk-up)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최하늘 작가(30)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 애쓰는 게이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왜 하필 게이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게이니까요"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흙이나 석고 등을 빚거나 덧붙여 형태를 만들어가는 소조 기법과 빈약한 한국 퀴어 아트 뼈대에 살을 붙여가고자 하는 작가의 처지가 비슷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퀴어 아트는 성소수자와 관련한 이미지나 이슈를 다루는 미술 경향을 일컫는다.

이번 전시작들은 도수 치료, 주짓수 대련이나 실내자전거를 타는 등 평범한 삶을 통해 퀴어 문화를 과감하고 솔직하게 드러낸다. 도수치료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접촉, 주짓수 대련을 하는 두 사람이 마치 한 몸처럼 얽히고 설키는 모습, 실내자전거와 사람 사이의 밀접하고 끈적한 엮임 등 일상의 경험에 작가의 퀴어적 상상력을 결부했다. 퀴어는 기이하거나 이상하다는 뜻을 지녔지만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하는 삶의 일부라고 전한다.

전시작 '씨름(Bulky_fusion 1)'에서 '퓨전'은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용어다. 비슷한 전투력과 체격을 가진 두 사람이 하나로 합체해 더욱 강력한 초전사로 변신하는 기술이다. 각각 붉은색과 파란색 샅바를 매고 있는 두 남성은 좌우대칭으로 손을 맞대는 동일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씨름처럼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덩어리로 결합하려 한다.

최하늘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 제공 = 아라리오뮤지엄]
또 다른 조각 '겁박의 순간을 기억하는 육면체(He can't forget those memories)'는 서구 미니멀리즘 조각처럼 보이는 직육면체 표면에 사도마도히즘(Sadomasochism)을 연상시키는 밧줄 자국을 음각으로 새겼다. 사도마도히즘은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 합성어로 가학적인 성향과 피학적인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게이들이 지배-복종적 성관계를 즐긴다는 사회적 인식을 조각가와 조각의 관계로 연결시켰다.

이규식 독립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만화적인 요소와 그에 걸맞은 독특한 미감의 조형성, 국영문 제목을 비교할 때 느껴지는 위트와 같은 장치들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퀴어적 상상력을 더욱 매끄럽게 촉발하도록 만든다"고 평했다.

전시를 기획한 아라리오뮤지엄 측은 "한국 특유의 퀴어 아트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최하늘 작가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합정지구(2017), 산수문화(2018)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2019),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0), 아르코미술관(2021)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9년에는 한 해 동안 참여한 전시와 작업들을 정리한 소설 '로버스트 제어/벤타블랙'을 출간하기도 했다. 전시는 내년 3월 6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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