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이면 4채 살 수 있어요" 투기판 된 지식산업센터

이기우 기자 2021. 9. 2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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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 80%까지 대출되고 전매 가능, 투기 수요 몰려

직장인 이모(39)씨는 올 초 지인에게 ‘지식산업센터’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들었다. “유일하게 남은 수익형 부동산이며, 적은 자본으로도 쏠쏠한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관련 카페나 블로그,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에서도 지식산업센터에 대한 정보는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29일 카카오톡에서 ‘지식산업센터’로 검색하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대화방을 5~10개 이상 찾을 수 있었다. “현금 1억원이면 4채를 매입해 한 달 임대료로만 240만원을 벌 수 있다” “보유 주택 수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정보들이 오가고 있다.

중소 제조·IT 기업에 사무 공간을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세운 ‘지식산업센터’가 부동산 투기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는 지식산업센터는 개인이든 법인이든 사업자등록을 하면 분양받을 수 있다. 이렇게 분양받은 사무실에서 기업을 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분양받아 임대하거나 전매해서 시세 차익을 노리는 이가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지식산업센터 건물. 이곳에 입주한 사무실은 2017년 분양 가격이 평당 1200만원 선이었지만, 최근엔 평당 2500만원에 거래됐다. 아파트와 비교해 대출 규제를 덜 받고, 취득세 등 각종 세금 혜택이 많다는 점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가격이 뛴 것이다. /김지호 기자

◇부동산 투기 대상이 된 지식산업센터

지식산업센터 투자는 아파트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지식산업센터 사무실은 분양가의 70~80%까지 대출받을 수 있고, 분양권을 사고파는 데도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부동산 업체는 “분양받아 입주하는 업체는 취득세 50%와 등록세 37.5%를 감면받을 수 있다”면서 “저렴하게 분양받은 후 웃돈을 붙여 분양권을 전매하는 식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많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몰리면서 서울 내 지식산업센터 실거래가는 평당 3000만원을 넘보고 있다. 2017년 말 평당 1200만원 정도에 분양된 성동구 성수동 한 지식산업센터는 지난 6월 평당 2500만원에 거래됐다. 분양가 역시 1800만원 선까지 올랐다.

공급도 크게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이 입수한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지식산업센터 운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까지 전국 481곳에 불과했던 지식산업센터는 지난해 1208곳으로 늘었다. 특히 2018년 97곳, 2019년 130곳, 2020년 139곳으로 최근 3년간 급증했다. 개인 투자자가 늘면서 분양 완판이 계속되자 건설사들이 앞다퉈 지식산업센터 공급에 나선 탓이다. 신정훈 의원은 “지식산업센터에 부동산 투기 수요의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조속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애꿎은 중소기업이 피해

지식산업센터 분양권과 실거래가가 큰 폭으로 뛰면서 피해를 보게 된 것은 실제 수요자인 중소·벤처 기업인들이다. 영상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 중인 윤모(41)씨는 올해 초부터 사무실 이전을 위해 서울 지하철역 인근의 지식산업센터 사무실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의 분양권 가격이 6개월 만에 평당 1300만원에서 평당 1800만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윤씨는 “부동산 중개 사무소에서 중국인들까지 분양권 투자에 나섰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지식산업센터에서 저렴하게 사무실을 구했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했다.

지식산업센터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매매가는 치솟은 반면, 공급이 워낙 많은 탓에 임대료는 그대로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공실 위험도 크다. 서울 가양역 인근의 한 지식산업센터는 지난 4월 준공됐지만 아직 절반이 비어있다. 동탄, 하남 등 지식산업센터가 몰려있는 지역에서는 건물 통째 공실인 경우도 있다. 지식산업센터를 전문으로 하는 분양 대행사 관계자는 “주택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로 지식산업센터가 인기를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임차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많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한다”며 “자칫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기라도 하면 뒤늦게 투자한 사람들은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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