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수능 킬러문항 방지법
[경향신문]
영화나 드라마 속 킬러의 모습은 섬뜩하다. 몸을 숨긴 채 조용히 표적에 다가간 뒤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총격을 가한다. 단검으로 제거 대상의 급소를 공격하는가 하면 높은 건물에 은신해 있다 원거리 목표물을 단 한 방에 저격한다. 피가 튀는 끔찍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임무에 집중한다. 그런데 이 킬러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교육에서도 쓰인다. 학생들 간 변별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출제되는 최고난도의 문항을 ‘킬러문항’이라고 한다.
고교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넘어서는 킬러문항은 가뜩이나 수험장에서 긴장하는 수험생들을 ‘저격’한다. 배점이 대부분 3~4점으로 다른 과목보다 높은 수학에서 저격 본능을 뽐낸다. 지난해까지 객관식과 주관식 마지막 문제인 21, 30번 문제가 킬러문항으로 꼽혔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으로 바뀐 올해부터는 수학 영역 선택과목에 따라 킬러문항도 달라지고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현직 교사와 교육과정 전문가 12명으로 평가단을 꾸려 9월 치른 모의평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수학 문제 4개(공통수학 3문항, 미적분 1문항)가 고교 교육과정 수준과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대학 과정 수학을 배운 경우라면 쉽게 풀 수 있겠지만, 고교 교육과정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풀이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것이다. 결국 정상적인 학교교육만으로는 준비가 어렵고 학원에서 따로 배워야 유리하다는 말이다.
이런 킬러문항을 수능에서 없애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선행교육규제법 개정안’으로, 현재 논술이나 면접 등 대학별 고사, 내신 시험 등이던 이 법의 적용 대상에 수능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킬러문항을 잡자고 학생들이 초등~고교 교육과정을 학원에서 몇번씩이나 돌아야 하고, 그래도 수포자들이 수두룩한 형편이니 취지에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현행 상대평가 체제에서 수능 출제 규제를 강화하면 자칫 변별력을 약화시켜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능만 건드리기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이런 법안까지 나오게 하는 교육현실이 씁쓸하다.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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