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 기시다 당선에도 한일관계 진전 어려울듯
[경향신문]
2015년 위안부 합의 주역…과거사 갈등 한국 정부 책임 돌려
청와대 “미래지향적 협력 기대” 밝혔지만 갈등 해결 난망
정부는 29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정무조사회장이 당선, 차기 총리로 사실상 결정된 것에 대해 일본과 협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4년 넘게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신임 총재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현 총리보다는 적극적인 외교 행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그 역시 강제징용·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관련 현안에 완고한 시각을 갖고 있어 새 내각 출범 이후에도 한·일관계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시다 전 정무조사회장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것과 관련 “우리 정부는 새로 출범하게 될 일본 내각과 한·일 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일본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과거사와 실질 협력 사안을 분리 대응하는 ‘투트랙’ 기조를 재확인한 것이다. 임기 8개월여를 남겨두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도쿄올림픽 계기 정상회담이 무산된 이후에도 일본과의 대화에 열려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기시다 신임 총재는 자민당 내에서 온건 성향으로 분류된다. 2012~2017년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총재가 외교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스가 총리는 역사수정주의에 바탕을 둔 전임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강경한 한·일관계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지지율도 바닥을 면치 못하면서 외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기시다 총재 역시 한·일 갈등의 뿌리인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한국이 과거사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고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외무상으로 재직하던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주도한 그는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시다 총재는 지난 18일 일본기자클럽 토론에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위안부 합의 내용을 모두 이행했다면서 문제 해결의 “볼(공)은 한국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클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투트랙 기조에 따라 한·일 간 대화와 협력 의지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일본은 과거사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자세로 협력에 응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강제징용 해법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협의가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는 와중에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 시한마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 법원이 지난 27일 처음으로 미쓰비시의 국내 자산 매각을 명령하자, 일본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2년이 넘도록 해제될 기미가 없고,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한·일 간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일본의 새 내각 출범에 따른 한·일관계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임기 말의 문 대통령이 시간적 제약과 대선을 앞둔 정치적 부담 때문에 과거사 해법 등에서 일본에 전향적인 제안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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