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이 보여주지 않는 중국

한겨레 2021. 9. 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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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번 학기에 중국 수업을 개설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대학생들이 중국 역사에 대한 기초 지식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좋든 싫든 전세계에서 중국이 하나의 ‘문제’로 등장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최근 학계에서 유행하는 중국 현대사 다시 쓰기 작업을 소개했다. ‘다시’ 쓰기를 쟁점화하려면 제국주의나 사회주의 혁명 등 기존 역사 서술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할 텐데, 온라인 화면에 동동 떠 있는 학생들의 얼굴엔 물음표만 가득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법 ‘잘나가는’ 대학이 아닌가. 게다가 명문대 입학 준비는 유치원 때부터 한다지 않던가.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이지만,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는 선택과목이다. 일국사나 유럽중심주의 편향을 넘어 세계 시민으로서의 공존을 염두에 둔 역사 서술이 돋보이지만, 다루는 범위가 넓다 보니 학생들이 선택을 꺼린다. 지난 5년간 수능에서 두 과목을 선택한 비율은 각각 10퍼센트 안팎에 불과하다. 학생들을 나무랄 게 아니라 교육 정책을 입시 대책으로 축소한 어른들의 책임을 묻는 게 옳다.

학습 기회를 놓쳤다면 양국 간 교류를 넓히는 게 중요할 텐데 안타깝게도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고학번 학생들은 그나마 개인적인 여행이나 한-중 교류 이벤트에 참여한 경험을 언급하지만, 팬데믹 이후 입학한 학생들은 최근 읽은 책이나 포털에 등장하는 기사를 중국 이해의 주요 자원으로 삼는다. 삼라만상 가운데 어떤 중국을 문제화·사건화할지에 대해 언론의 책임이 막중한 때다.

하지만 최근의 중국 관련 보도를 보면 언론이 ‘반중’ 제조업체가 된 게 아닌지 궁금할 정도다. 중국을 향한 시선은 ‘위협적인 중국’과 ‘기괴한 중국’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헤드라인은 자극적인 문구투성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를 베껴 쓰는 관행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최근 ‘냥파오’(娘炮), 이른바 남성 연예인이 상업적 이익만을 좇아 여성스럽게 분장하는 것을 막겠다는 중국 광전총국(방송 규제기구) 조치에 대해 한국 언론은 “예쁜 남자” “화장하는 남자” 퇴출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디어오늘>이 지적한 대로, 언론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과잉 해석을 검증 없이 받아쓴 촌극이었다. 연세대에서 중국의 한류 팬덤을 주제로 석사 학위 논문을 쓴 펑진니씨에 따르면, ‘냥파오’ 규제는 2018년에 이미 등장했다. 당시 지목된 연예인 다수가 인터넷 플랫폼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데다, 아이돌 팬들은 티브이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광전총국의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규제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인류학자로서, 중국인의 다채로운 삶에 대한 관심이나 이들의 역동을 담아낼 의지가 언론 보도에서 별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 중국 인민은 ‘억압적’ 국가의 지령에 순응하거나, 열광하거나 둘 중 하나로 묘사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껏 달아오른 중국 ‘분노청년’(憤靑)의 애국주의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이들을 중국 청년 세대의 전형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베를 한국 청년 세대의 대표로 내세우는 것만큼 위험하다.

실제로,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 규제에 관한 중국 내부의 공론장은 상당히 활발하다. 정부의 규제 조항이 여러가지라 반응도 제각각이지만, “스타들은 어쩌다 아무 제약도 안 받는 존재가 되었나?”같이 개인의 도덕성을 겨냥한 질문에서 출발해 연예인, 소속사, 제작사, 광고사, 팬덤, 온라인 플랫폼의 복잡한 얽힘을 파고들고, 모든 악순환의 배후에 놓인 자본을 비판하는 논의들이 제법 눈에 띈다. 무리한 모금 활동이나 댓글 관리에서 해방되었다고 안도하는 팬도, 화제성만으로 트래픽을 늘려 돈을 버는 이른바 “데이터 연예인”(流量藝人)의 탄생에 공모한 게 아닌지 되묻는 관계자도 늘었다.

수업 첫 시간에 <중국 딜레마>를 읽고 젊은 저항자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학생이 비평문에 소감을 남겼다. “중국에서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했던 우리는 그들보다 더 ‘방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교장이 학생들이 남긴 음식까지 먹으며 정부 캠페인을 맹종하는 동영상을 앞다퉈 보도하지만, 14억 인구의 나라에서 정작 ‘싸우는’ 사람의 존재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든 한국의 중국 관련 공론장이 외려 낯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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