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3일 쉴게요

한겨레 2021. 9. 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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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가 안착하려면, 직장 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아프면 (적어도 3일) 쉴 수 있는’ 노동 환경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편집국에서] 전정윤|사회정책부장

메르스 사태를 겪었던 2015년 7월 ‘더 센 놈들이 한국 노린다’는 기획기사를 쓰고 얼마 뒤 사회정책부를 떠났습니다. ‘더 센 놈’이 확실히 오는데 언제 어떤 감염병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기사 내용도, ‘더 센 놈이 한창일 때 다시 불려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모두 현실이 됐습니다. 인사 직전 국제부에서 다뤘던 아프가니스탄의 아비규환에 비하면야 ‘그래도 한국 사회는 천국’이라고 여기며 부담감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자마자 ‘더 센 놈’과 강력한 방역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의 자살, 20대 중후반 여성들의 우울증 급증을 목도하니 ‘나와 더 가까운 지옥’일 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어깨가 무겁습니다.

좋은 사회정책 기사를 쓰겠다고 고민할 때마다 20년 전 기사가 떠오릅니다. 제가 ‘언시생’이었던 2001년 7월, 김창석 기자가 <한겨레21>에 쓴 “너 회사에서 잘렸냐?”입니다. 당시만 해도 ‘말 같지 않은 소리’로 치부되던 아빠 육아휴직 정책을, ‘기자가 뛰어든 세상’이라는 신선한 체험 형식에 담아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겨레에 입사해보니, 실제로 남성 동료들이 불이익 없이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는 그동안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많은 기사들을 써왔습니다만, 이 기사는 저에게 ‘좋은 정책 기사의 표본’처럼 각인됐습니다. 언론이 여러 걸음 앞서 의제화한 사회정책을 실제로 자사에서 바로 실천했고, 그것이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고 더 좋은 삶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난 8월 통계청이 공개한 ‘2015~2019년 아동가구 통계등록부’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8살 이하 자녀를 둔 상용직 부모 중 아버지의 육아휴직률은 2.2%, 중소기업에선 그 비율이 1.1%에 그칩니다. 그러나 20년 전만 해도 법령 미비 탓에 극소수 아빠들만 ‘완전 무급휴직’을 감내했던 데 비하면, 맞돌봄 문화 정착과 제도 정비로 남성 육아휴직이 확산되는 중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한겨레가 이런 기사를 많이 쓰길 바라지만, 우리 삶에서의 실천이 뒤따라야 좋은 정책 기사가 될 것입니다. 한겨레는 지난 16일치 1·4면에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기획을 실었습니다. 강력한 거리두기 정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의료·방역 체계 개편 방향을 제시한 기획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4면에 실린 ‘아프면 3일 쉬기’는 최초 독자인 한겨레 구성원들조차 “우리 회사도 못 하는데 그게 되겠냐”는 냉소가 많았습니다.

아빠도 1년씩 육아휴직을 하는 회사에서 아프면 3일 쉬는 일이 ‘불가능’으로 여겨지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늘 인원이 부족한 근무 여건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제가 몇해 전 독감에 걸렸을 때, 회사에서 코를 푸느라 ‘각 휴지’ 한 통을 하루에 다 쓴 적이 있습니다. 옆에 앉은 부서장은 물론 저도 휴가는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지금 돌이켜 보면, 아파서 쉬는 걸 ‘민폐’라 여기면서도 동료를 감염시키는 게 ‘더 민폐’라는 걸 모르던 깜깜한 세월이었습니다.

긴 세월의 관성 탓인지, 팬데믹 시대의 유산으로 남겨야 할 중요한 생활방역 정책을 기사화하면서도 저는 잠시 ‘현실적 고민’으로 주춤했습니다. “가령 아프면 재택근무라든가…” 질병 휴가 대신 과도기적 제안에 대해 묻자, 후배가 반박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코로나 전파 차단을 위해 기존엔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이미 다종다양하게 이뤄졌습니다. 정부 지침으로 영업장 문도 닫는데, 아프면 3~4일 쉴 수 있게 사업주와 학교가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에 소극적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그것을 위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위기라고 하지만, 사실은 위기를 겪으며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아프면 3일 쉬기’는 우리가 팬데믹 위기를 겪으며 깨달은, 상대적으로 쉽고 효과적인 대안입니다. ‘부서 단체로 감기라도 들면 어떡하지?’ 가뜩이나 작은 마음이 더욱 움츠러들지만, 백신접종 휴가를 이틀씩 쓰면서도 십시일반 기사는 막아냈던 경험을 떠올리며 사회정책부가 먼저 해 보이겠습니다. 아프면 사흘 쉴게요!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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