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학내 기술 사업화 적극 지원..과학기술계 BTS 키워야"
■대학 '퍼스트무버'로 거듭나려면
우수한 기술연구 실용화 위해
정부·기업 통 큰 투자 등 필요
美처럼 대학에 많은 기업 입주
산학협력 생태계 조성도 필수
대학은 실생활 유용한 논문 등
4차산업혁명 테스트베드 돼야
“대학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기술 사업화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대학을 비롯한 과학기술계에서 퍼스트 무버(선도자) 기술이 꽃피울 수 있도록 해 BTS 같은 글로벌 스타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28일 UNIST에서 열린 ‘제1회 대학 기업가 정신 토크콘서트’에서 “퍼스트 무버의 길을 가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험 정신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대학이 선도 연구를 하고 실용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총장은 “UNIST가 에너지·배터리 등 탄소 중립 기술의 연구 성과가 좋지만 대량생산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라며 “실증 사업을 어떻게 지원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대학 못지않게 정부와 기업이 선투자에 대해 두려움을 떨치고 모험 정신을 발휘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퍼스트 무버 유니스트’라는 책을 쓴 그는 대학이 4차 산업혁명의 테스트베드가 되기 위해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조재필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특훈교수가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조 교수는 수명이 길고 폭발 위험이 적은 전기차용 배터리 양극재를 개발, 79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짓고 있다. 조 교수는 “학교에서 ‘논문은 없어지는 낙엽과 같다. 실생활에 도움될 것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수 논문을 쓰면서도 사업화 의지를 불태웠다”며 “창업 후 4년간 고난의 길을 걸어왔지만 내년이면 전기차 10만 대 이상에 양극재를 공급할 수 있는 공장을 완공한다”고 뿌듯해 했다.
그가 창업한 에스엠랩은 내년 하반기 기술 특례 상장 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사) 등극이 예상된다. 조 교수는 “비싼 코발트 함량을 1% 미만으로 줄이고 니켈 함량을 98%까지 끌어올려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크게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대기업들도 못 하는 기술”이라며 “현재 ‘왜 매출이 없느냐’는 오해도 받지만 진입 장벽이 높은 기술인 만큼 양산에 본격 돌입하면 오는 2030년까지 매출 3조 원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날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한 많은 스타트업과 예비 창업 교원·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추종자가 돼서는 안 되고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며 “스타트업이 혁신 틈새 기술을 찾아 고객의 평가를 받고 투자자에게 확신을 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스타트업 투자를 하는 윤필구 미국 빅베이슨캐피털 대표는 한미 간 창업 생태계와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방안을 설명했다. 윤 대표는 게임 유니콘인 콩스튜디오의 기업가치가 50억 원에 불과할 때 투자했을 정도로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한다. 윤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계가 실리콘밸리와 비교하며 ‘우린 왜 못 하느냐’고 자책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10여년 전에는 스타트업 초기 투자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몇 십 배나 늘어나는 등 창업 생태계가 고무적으로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실리콘밸리가 반도체 재료 등 제조업에서 시작해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를 구축했는데 제조 도시인 울산도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했다.
다만 윤 대표는 “미국은 80%가량이 상장 전 인수합병(M&A)돼 창업자와 임직원·투자자가 돈방석에 앉지만 한국은 M&A 문화가 크게 부족하다”며 “한국에서 M&A를 할 때 실적이 안 좋으면 담당자가 책임져야 하고 정부 눈치도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현재 10개가 넘는 한국 유니콘의 경우 바이오 기업 한 곳을 빼면 대부분 배달·게임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전자상거래) 업체로 게임을 제외하고는 미국 B2B(기업과 기업 간 전자상거래) 업체와 달리 해외 진출이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대학에 많은 기업들이 입주해 산학 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고 대학의 TLO(기술이전 조직)도 전문성이 뛰어나다”고 했다.
이날 한국 교수들이 창업한 기업들이 중국이나 이스라엘 등과 달리 아직 나스닥시장에 상장하지 못하는 현실도 거론됐다. 윤 대표는 “미국 스타트업은 외부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 비즈니스 스킬을 키우고 공급망을 확대한다”면서 “반면 한국의 교수 스타트업들은 창업자가 유능한 외부 인재에게 지분을 잘 나눠주지 않아 스케일업하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만약 나스닥에 상장하면 코스닥에 비해 기업가치가 몇 배 올라갈 것”이라며 “다만 나스닥에서는 한국보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철저하게 검증받아 상장 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철주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장은 “스타트업·벤처를 하려면 도전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생각하는 철학과 도전하는 가치가 같은 사람들이 뭉쳐 창업에 도전하는 생태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혁신·1등·성공은 기업가 정신으로 리스크·속도·시간의 변수를 극복해야 가능하고, 그래야 잘살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클리노믹스·리센스메디컬·에스엠랩·클래스101·타이로스코프 등 UNIST의 교원·학생 창업 기업이 130여 개에 달한다”며 “글로벌 창업 프로그램과 스타트업 멘토 시스템을 통해 유니콘을 키워내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종환 서울경제 대표이사 부회장은 “우리 사회는 지역·세대·젠더·빈부 갈등과 함께 성장 잠재력 훼손이라는 문제가 있다”며 “대학에서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기업가 정신을 갖고 창업에 뛰어드는 게 성장 동력을 확충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UNIST에 이어 서울대·KAIST·고려대·성균관대 등 10개 대학에서 순차적으로 기업가 정신 관련 토크콘서트를 열 계획”이라며 “대한민국의 창대한 미래를 위해 서울경제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울산=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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