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 주인느낌..대기업 연봉 안부럽다", "10년이나 버텼지만..대박은 가뭄에 콩 나듯"

홍성용 입력 2021. 9. 29. 17:30 수정 2021. 9.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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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꽃' 스톡옵션 명과 암
스타트업 다니는 5인에게 들어보니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대한민국 스타트업 업계는 올해 급격하게 성장하며 퀀텀점프(대도약) 시대를 열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스타트업 투자 약정금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하며, 시리즈A 투자(초기투자)를 받은 국내 스타트업도 2016년 상반기 75개에서 올 상반기 192개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스타트업들은 업계의 꽃으로 불리는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과 이색 복지 등을 장착한 채 MZ세대(1980년~2000년대 초 출생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특히 배달의민족·야놀자·토스·쏘카 등 2010년대에 등장한 스타트업 근무자들의 스톡옵션 대박 사례가 속속 전해지면서 스타트업 선택은 차선이 아닌 최선으로 꼽히는 일도 부쩍 늘었다.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 엔젤리그를 운영 중인 캡박스는 이용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스톡옵션을 통한 보상 가치가 1억원 미만이라는 응답은 43%, 1억~5억원은 30%, 5억원 초과는 13%에 달했다. 평균 보유 기간은 3년 미만이 45%였고, 5명 중 1명은 5년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금 마련, 수익 실현, 부동산 구매, 사업자금 마련, 퇴사 순으로 스톡옵션을 매각하는 이유도 다양했다.

스톡옵션은 업계 종사자에게 박봉과 고된 업무를 견뎌내는 동기 부여 효과를 줬지만,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몇 년을 버텨내는 것 자체가 녹록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7~10년 차 업계 종사자 5인을 만나 스톡옵션의 A부터 Z까지 꼼꼼히 들어봤다.

◆ "스톡옵션으로 '오너십' 생겨"
스톡옵션을 부여하고 행사·매각할 수 있도록 한 제도에 대해 업계 종사자 모두 핵심적인 동기 부여 수단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일반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과 초창기 스타트업의 고된 업무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는 얘기다. 투자 관련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업계 10년 차 A씨는 세 차례 받은 스톡옵션을 두 차례 행사하고 일부 매각했다.

A씨는 "스톡옵션을 받으니 오너십(주인의식)이 생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예뻐 보이고, 성과를 못 내는 팀은 답답하게 느껴진다"며 "나부터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일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부 매각까지 진행해 보니 적은 연봉으로 오랜 시간 고생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A씨는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최대한 많은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준 당시 회사가 좋은 회사였다"면서 "1세대 스타트업인 야놀자·토스·쏘카 등 현재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이 된 회사에서 오래 고생한 직원 중에는 10억원 넘게 보상받은 사람도 꽤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업계 7년 차로 현재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서 근무 중인 B씨도 대기업 연봉을 이길 유일한 방법이 스톡옵션이라고 강조했다. B씨는 "업계에 몸담기 시작할 무렵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합격한 친구와 비교해도 현재 비슷한 수준이거나 내가 좀 더 많이 벌었다. 생애소득 수준으로 봐도 나이에 비해 조금 더 많은 편"이라며 "스타트업 월급으로는 대기업을 따라가기 힘들고 퇴직할 때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지만, 스톡옵션이 유일하게 이 같은 차이를 상쇄할 제도"라고 밝혔다.

◆ "스톡옵션 행사 편해졌지만…"

비상장 주식 거래 서비스인 '엔젤리그' '증권플러스 비상장' 같은 플랫폼이 다수 등장하며 스톡옵션의 최종 현금화인 매각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쉬워졌다는 평가도 많았다. 2012년 첫 회사로 스타트업을 선택한 뒤 두 차례 스톡옵션을 행사한 C씨도 이후 전량 매각으로 수익 실현을 했다.

C씨는 "현재는 플랫폼을 통해 판매자나 구매자 사이에 가격이 공개되고 매각도 수월하지만, 과거에는 매수자 우위 시장이었다"며 "속칭 '후려치기'를 당하면 40~50% 헐값에 매각되기도 했고, 20~30%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만 C씨는 스타트업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초창기에 입사했기 때문에 꽤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시리즈A가 아닌 시리즈C(성장단계 기업) 이후 수준에서 입사한 사람들의 스톡옵션은 매각해도 대기업 성과급 정도"라고 말했다.

스톡옵션 행사 이후 매각이 쉽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모빌리티 스타트업의 리더급인 D씨는 "매니저급 이상을 채용하거나, 시장에서 구하기 힘든 개발 직군은 입사할 때 곧바로 스톡옵션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주변에 스톡옵션을 행사하기는 해도 매각에까지 이르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업계 10년 차로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 회사에서 근무하는 E씨도 "스톡옵션 행사를 위한 상법상 최소 기간이 2년인데, 보통 초기 스타트업의 1년은 일반 기업보다 집중도가 높고 업무 사이클도 빨라 피로도가 훨씬 크다"며 "일반 기업의 2~3년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행사 요건을 갖추기 전에 지쳐서 회사를 나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적절하게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선 A씨는 "첫째로 스톡옵션 행사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 둘째로 수량이 많아야 하며, 셋째로 베스팅(행사를 위한 최소 조건) 기간이 짧을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C씨도 "회사가 성장하며 미래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면, 행사 시점이 도래할 때마다 이 회사에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5억~10억원 가까이 되는 큰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작지만 강한 회사를 골라내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B씨는 "인생이 바뀔 만큼 큰돈을 벌려면 시리즈A 정도의 회사에 입사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 투자를 받고 망한 회사는 정말로 많다"며 "작은데 좋은 회사를 구분해내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스톡옵션 행사도 쉽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꽤 많은 세금과 불투명한 회사 문화는 여전히 문제"
스톡옵션 행사 때 적용하는 세금이 꽤 많다는 것은 여전히 부담으로 꼽힌다. 현행 제도에서는 스톡옵션을 행사(매수)할 때 3000만원까지만 비과세다. 3000만원 이상이면 시가 대비 평가차익을 연봉과 합산해 소득세를 내야 한다. 재직 도중 스톡옵션을 행사하면 '근로소득', 퇴사 후 행사하면 '기타소득'으로 과세된다. 아울러 회사가 상장한 뒤 주식을 팔게 될 때 10억원이 넘으면 '대주주 양도세 대상'으로 분류돼 25%의 세금까지 내야 한다.

D씨는 "기업공개(IPO)가 목표인 유니콘 기업은 세금 계산까지 포함해 현금화를 염두에 두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세금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서 "주식을 매수하는 때가 되면 최소 몇 천만원에서 최대 억원대까지 목돈이 드는 경우가 많아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B씨도 "소득이 갑자기 뛰어서 세금이 몇 달 치 월급만큼 나왔다"고 덧붙였다.

스톡옵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리는 회사 문화도 지적됐다. C씨는 "회사에서 스톡옵션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문화여서 스톡옵션 행사와 관련해 발생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힘들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C씨는 "하지만 사내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스톡옵션 행사나 매각 때 발생하는 문제를 문서에 정리해 공유하는 회사도 있었다. 회사마다 다르다"고 밝혔다.

스톡옵션만 좇다 보면 결국 일에서 얻는 보람 등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의견도 나왔다. E씨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스톡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일한다면 언제부턴가 일이 내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 든다. 일이 곧 스트레스"라고 지적했다.

D씨도 "스타트업은 5~10년 길게 보고 가야 한다. 인수·합병이나 상장 같은 이벤트는 예상할 수 없기에 스톡옵션 매각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며 "외적인 변수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루틴하게 일하는 자기 모습을 잃어버린다"고 강조했다.

[홍성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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