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성 떨어질라"..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홀대받는 건설사 컨소시엄

최온정 기자 2021. 9. 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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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여러 건설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조합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1000가구를 넘는 대단지 사업장에서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내면서 ‘컨소시엄 불가’ 조항을 넣는 사례도 증가했다. 주민들은 단일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의 품질과 상품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해 컨소시엄 시공방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 25일 신림1구역 재개발사업(4200가구 건립) 조합은 대의원회의를 열고 컨소시엄 시공사를 제한하지 않는 기존 방식대로 2차 입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회의는 지난달 31일 진행된 1차 입찰에 GS건설·DL이앤씨·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참여한 후, 일부 주민들을 중심으로 재입찰을 아예 취소하고 ‘컨소시엄 불가’를 조건으로 내건 입찰공고를 새로 내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열렸다.

서울 노량진1 재정비촉진구역 일대 사진. /연합뉴스

조합 관계자는 “대의원회에서는 사업계획서도 받아보지 않은 상황에서 컨소시엄 시공사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입찰 취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2차 입찰은 예정대로 다음달 5일까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컨소시엄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제24조에 따르면 일반경쟁입찰자가 없거나 단독응찰의 사유로 2회 이상 유찰된 경우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수 있어서다. 2차 입찰에서도 GS건설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할 경우 수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에 이 지역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컨소시엄 불가’를 명시한 입찰공고를 다시 낼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서도 걷고 있다.

컨소시엄 시공은 건설사 입장에서 미분양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동산 침체기였던 2010년대 초반에 붐이 일기도 했다. 당시 단지 규모가 1000가구만 넘어도 컨소시엄을 꾸려 수주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부동산 활황기에 접어들면서 정비사업이 활성화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주민들이 컨소시엄 형식으로 입찰을 할 경우 건설사 간 경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반대하는 경우가 늘었다. 건설사가 개별적으로 입찰하면 사업 수주를 위해 앞다퉈 더 좋은 조건을 내놓는 반면, 컨소시엄으로 입찰하면 경쟁 효과가 떨어져 조합원들의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또 컨소시엄으로 아파트 단지를 지을 경우 시공 주체별로 담당 영역이 달라 시공 품질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갖고있다. 신림1구역 주민 A씨는 “건설사가 컨소시엄 형태로 시공을 맡으면 아파트에 하자가 발생했을 때 건설사끼리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면서 “컨소시엄 아파트의 구조적인 한계”라고 지적했다.

신림1구역 역시 이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앞서 입찰에 참여했던 컨소시엄은 주민들의 반감을 낮추기 위해 준공 후 발생하는 하자를 처리할 통합AS센터를 운영하고, 조합원들이 단지명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제안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신림1구역이 4200가구가 들어서는 대규모 사업인 만큼 사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컨소시엄 시공에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조합원들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한 셈이다.

컨소시엄 시공사를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시공사를 선정한 한남3구역도 사업비가 2조원에 달해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컨소시엄이 사업을 따낼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반발로 각사가 단독으로 입찰했고, 현대건설이 단독수주했다. 올해 1월 대우·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을 수주한 노원구 상계2구역 재개발 사업도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 컨소시엄 찬성·반대를 놓고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신림1구역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입찰공고에서부터 ‘컨소시엄 금지’ 조항을 다는 조합도 늘어나고 있다. 1372가구가 들어오는 마천4구역 조합은 지난달 낸 입찰 재공고에서 ‘공동도급 불가’를 명시했고, 대구 노원2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1558가구 건립)도 지난달 조합측에서 낸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에서 ‘공동참여, 컨소시엄 불가’를 명시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고급 브랜드라는 이미지는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라면서 “과거에 비해 컨소시엄 단지의 주거 품질이 향상됐다고 해도, 주민들 입장에서는 단일 브랜드를 더 선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이것이 잘못된 인식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들어 컨소시엄에 대한 비선호 현상이 더 강화되는 추세”라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일리가 있지만, 아예 공구를 나눠서 동별로 전담하는 시공사를 구분할 경우에는 책임소재나 품질관리가 달라지므로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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