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사실 된 '전세대출 규제'..금리인상·한도축소 가능성

국종환 기자 2021. 9. 29. 15: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금융위원장 "전세대출 금리·조건 유리하다는 지적 있다"
금리인상·한도축소·보증비율 축소·심사강화 등 거론
고승범 금융위원장.© News1 김명섭 기자

(서울=뉴스1) 국종환 기자 =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실수요자가 많지만 갭투자에도 악용돼온 전세대출에 대해 규제 가능성을 거듭 언급하면서 규제 내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 위원장은 전세대출이 신용대출 등 다른 대출에 비해 금리 및 조건이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해, 전세대출에 대한 금리인상, 한도축소, 보증비율 축소, 심사강화 등이 새로운 규제에 담길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 위원장은 전날 정책금융기관장과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전세대출은 실수요자 대출이기에 세밀하게 봐야 하는 측면이 있지만 금리라든지 조건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어 그런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안을 확정하지 않았으며 여러 문제를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고 위원장은 지난 27일에도 경제·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 직후 "전세대출의 여러 조건이 좋고 하다 보니까 많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면서 "이런 면을 종합적으로 보도록 하겠다"고 말해 전세대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전세대출은 실수요 자금 성격이 커 금융당국은 그동안 서민들 피해를 우려해 규제에 신중을 기해왔다. 그러나 최근 전세대출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면서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전세대출도 손을 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28조6610억원) 중 절반 이상을 전세대출(14조7543억원)이 차지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증가액 중 전세대출 비율이 84%에 달했고, 신한은행도 75%나 됐다.

시계열을 넓혀서 보면 최근 전셋값이 많이 오른 것을 감안해도, 전세대출 증가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KB부동산 통계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12월말 4억2051만원에서 올 8월 6억4345만원으로 54%(2억2294만원) 올랐다. 그런데 5대 은행을 포함한 전 은행권의 전세대출 잔액은 2016년말 32조원에서 올 8월말 158조원으로 무려 400%(126조원)가량 폭증했다.

금융당국은 전셋값 상승 외에도 전세대출이 급증한 배경엔 투기수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용대출보다 훨씬 싼 2%대 저금리로 쉽게 빌릴 수 있다 보니 여윳돈이 있어도 최대한 전세대츨을 끌어 써 투자에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기준 5대 은행의 주택금융공사(주금공) 보증 전세대출 상품의 평균금리는 연 2.56~3.04%로, 신용대출(연 3.07~3.62%)보다 낮다.

전세대출은 전세금을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에 활용돼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의원실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 지역 주택 매수자들의 자금조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서울에서 집을 산 20~30대 6만3973명 가운데 52.2%(3만3365명)가 갭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이런 투기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전세대출의 보증 한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금리인상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대출은 주금공과 주택도시보증공사·서울보증보험 등이 90~100% 보증을 해 줘 금리가 낮게 책정된다. 이 공적보증 한도를 줄이면 은행이 떠안는 리스크가 커져 은행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최근 국민은행의 전세대출 관리 방안도 모범 사례로 꼽혀 당국 규제에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은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축소한 데 이어 이날부터 전세대출 한도를 임차보증금의 증액 범위 내로 제한했다.

예전엔 보증금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오를 경우 다른 대출이 없다면 전셋값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증액분인 2억원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과도한 대출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실수요자는 보호하면서도 여유자금이 있는데도 전세대출을 더 받아 악용하는 수요를 줄일 수 있는 대책으로 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밖에 투기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전세대출 심사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선 차주의 여유자금 현황 등을 샅샅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전세대출에도 '자금계획서'를 도입하거나, 실거주 및 기존 대출 상환 여부 등에 대한 확인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담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세시장 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배제된 규제 일변도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해 집값, 전셋값이 10%가량 급등한 상황에서 무조건 대출만 줄이라고 압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대출수요는 그대로인데 집값 안정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출만 조이면 그 피해는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jhkuk@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