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내 '2등 시민' 아랍계 향한 폭력.."#아랍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김윤나영 기자 2021. 9. 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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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올해 들어 살해된 아랍계 이스라엘인 희생자들의 사진. 와이넷 화면 갈무리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결혼식장에서 ‘묻지 마’ 총격 살해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스라엘 내 ‘#아랍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주민들의 치안 불안이 주요 사회 문제로 급부상했다.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는 28일(현지시간) 아랍계 공동체에 대한 폭력 퇴치를 위해 장관들로 구성된 특별팀을 소집할 방침을 밝혔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이 보도했다. 아랍계 정당과 무지개 연정을 꾸린 베네트 총리는 지난달에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에 대한 범죄를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총리까지 나서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한 이유는 아랍계 이스라엘인 거주지역의 치안 부재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현지 매체 와이넷은 이스라엘에서 올해만 아랍인 99명이 살해당했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20일 아랍계 주민 거주지인 이스라엘 타이베 지역의 한 결혼식장에서 ‘묻지 마’ 총격으로 25세 남성 하객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다치면서 여론이 폭발했다. 결혼식 하객이었던 용의자는 식사 도중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한 목격자는 “학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총성이 계속 들렸고, 음악이 끊겼고, 부상자들이 비명을 질렀다”고 현지 매체 하레츠에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영어와 히브리어, 아랍어로 “#아랍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해시태그 달기 운동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시위대 수십명이 지난 25일 코차프 야이르에 있는 오메르 바를레프 공공안전부 장관 집 앞에서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도 벌였다. 지난해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다만 미국 시위대가 경찰 권한 축소를 요구하는 것과는 달리 이스라엘 시위대는 경찰의 치안 증대를 요구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스라엘 시위대가 25일(현지시간) 중부 코차프 야이르에 있는오메르 바를레프 공공안전부 장관의 집 근처에서 “아랍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시위를 하고 있다. 코차프야이르|AP연합뉴스


현지 매체들은 경찰이 아랍인 거주지에서 일어난 범죄 단속에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머니를 지난 4월 총격 사건으로 잃은 마르와 만수르는 와이넷에 “괴한들이 미용실에서 총 5발을 쏘고 도주했는데도 경찰이 되려 피해자인 우리를 비난했다”고 말했다. 아랍인 거주지인 칼란수바에 사는 패디 카티브는 “집 안에 있어도 누구나 총격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치안이 극도로 좋지 않지만 경찰은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방관은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무관하지 않다. 이스라엘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2017~2020년 사이 이스라엘에서 병원으로 이송된 총격 사건 피해자와 용의자의 90%가 모두 아랍인이었다. 하레츠의 아랍계 칼럼니스트인 셰렌 팔라사브는 트위터에 “(유대인 거주지역인) 텔아비브 같은 곳에서 단 한 건이라도 살인이 있었다면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났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에서 2등 시민이 되는 기분이 어떤지 느끼기에 너무 슬프고 부끄럽다”고 적었다.

이스라엘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가 범죄조직의 뒤를 봐준다는 주장도 있다. 유대계와 아랍계 시민의 공존을 지향하는 시민단체 ‘아브라함 이니셔티브’의 타베트 아부 라스 공동이사는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신베트와 경찰은 팔레스타인 관련 정보 수집에 협력하는 대가로 아랍계 범죄 조직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의회 보고서는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불법 유통된 무기 40만개 대부분이 아랍인 거주지역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시민들은 투표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주택, 금융, 사회복지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 이스라엘 내 아랍인 거주지역은 슬럼화됐고 갱단들이 경찰의 역할을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전했다. 하레츠는 “노동 시장의 불평등과 인종 차별의 그늘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 세대가 범죄조직에 가담할 위험이 크다”면서 “정부는 아랍인에 대한 제도적 인종차별 정책을 근절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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