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 비둘기파 그리고..총리 예약한 기시다는 누구일까?

조기원 2021. 9. 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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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 있다" "색깔 없어" 평가 공존
아베 정부에서 4년 7개월간 외무상
경무장·경제우선 노선 파벌 수장
본인의 이념적 지향성은 분명하지 않아
기시다 후미오 새 자민당 총재. 기시가 총재 누리집 갈무리

‘안정감이 있지만 밋밋하다.’

29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일본의 제100대 총리 자리를 예약한 기시다 후미오(64) 전 당 정무조사회장에 대한 평가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겸손하고 침착하다” 같은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자기주장이 분명하지 않다” “독자적 색깔을 내지 못한다”는 부정적 평판도 따라다닌다. 본인도 이런 이미지를 알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총재 선거 당시) ‘기시다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기시다는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번 선거에서 설욕을 다짐했다. 이번엔 초반부터 일찌감치 총재 선거 출마를 밝히며 공세적으로 임했고, 재수 끝에 당선됐다.

기시다는 3세 정치인으로 ‘엘리트 코스’를 걸어 온 인물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중의원 의원을 지냈다. 아버지의 미국 근무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뉴욕의 공립학교에 다녔다. 기시다는 이 시절 겪은 인종차별이 자신이 정치인이 된 원점이었다고 말한다. 2013년 동영상 사이트인 <니코니코>의 프로그램 출연 때 당시를 회상하며 “(잘못된 점은) 정치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같은 세습 정치인인 아베 신조 전 총리처럼 아버지의 비서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망 뒤 지역구인 히로시마(현재 1구)를 물려받아 1993년 첫 당선됐다. 아베 전 총리, 노다 세이코 간사장 대행과 중의원 당선 동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때인 2001년 문부과학성 부대신에 임명돼 두각을 나타냈고, 2007년 아베 1차 정부 때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담당상’으로 첫 입각했다. 아베 2차 정부 때인 2012년 12월~2017년 8월까지 4년 7개월간 외무상을 지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히로시마 방문 때 외무성을 이끈 인물이 그였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 때 기시다 후미오(왼쪽) 당시 일본 외무상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기시다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역대 총리 4명을 배출한 자민당 명문 파벌인 ‘고치카이’(기시다파)의 회장이라는 점이다. 고치카이는 일본 고도경제성장을 이끈 이케다 하야토 전 총리(1960~64년 재임)가 창립한 파벌로 ‘경무장·경제 우선’ 이라는 자민당 보수 본류 노선을 걸었다. 기시다는 자민당 내 ‘비둘기파’로 꼽히는 고치카이의 회장을 2012년부터 맡고 있다. 그는 고치카이에 대한 애착을 자주 드러내 왔다. 최근 연설에서도 “보수 정치의 원점으로 돌아가 정중하게 관용적인 정치를 추진하자”고 말했다. 이케다 전 총리가 국민과의 대화를 강조하면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인 “관용과 인내”를 연상케 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 등 당내 보수 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인지 이념적 지향성이 불분명해 보이는 발언을 할 때가 적지 않다. 지난 24일 열린 정책 토론회에서 그는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총리가 되면 참배할지 묻는 말에 “시기 상황을 생각해 참배를 생각하겠다”고 모호하게 답했다. 또다른 후보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이 “총리 재임 중엔 하지 않겠다”,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참배하겠다”고 분명하게 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17일 시작된 자민당 총재 선출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공정한 경쟁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노 다로 규제개혁상,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 당 간사장 대행. 도쿄/AP 연합뉴스

기시다는 ‘적을 만들지 않는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권력자의 의향을 거스르지 않으며 발언도 지극히 무난한 경우가 많다.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출마를 고려했으나 단념하고, 3선에 나섰던 아베 당시 총재를 지지했다. 아베 전 총리에게 총리직 ‘선양’(자발적으로 물려주는 것)을 바란 행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지난해 8월 건강상의 문제로 돌연 사임한 뒤 총리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아니라 스가 요시히데였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첫 도전장을 낸 지난해부터 ‘박력이 없다’는 평가를 극복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 9월 첫 저서인 <기시다 비전. 분단에서 협조로>를 출간했다. 고이즈미 시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부터의 전환을 주장하며 분배를 강조한다. 분배를 강화해 격차 감소와 소득 증가로 연결하자는 ‘레이와(나루히토 일왕의 연호)판 소득배증 계획’을 주장한다. 이케다 전 총리가 10년안에 국민소득을 갑절로 늘리겠다며 내걸었던 간판 정책인 ‘소득배증 계획’에서 이름을 따왔다. 고치카이의 보수 본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작명으로 보인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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