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규정 희생양' 화성 산안농장 9개월만에 계란 출하

최해민 2021. 9. 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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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등급 '가' 판정.."이젠 3km 내 AI 발생해도 살처분 면제"
"공장식 농장 위주 질병등급제, 친환경 농장 현실 반영 못 해" 지적도

(화성=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4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행정 편의주의 살처분 규정 탓에 산란계를 모두 살처분해야 했던 경기 화성시 산안마을 농장이 계란 출하를 재개했다.

계란 유통이 금지된 지 9개월, 살처분 후 병아리를 새로 입식한 지 5개월 만이다.

산안농장에서 생산된 계란 [산안농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닭만 키우다가 오랜만에 계란 출하"

29일 오전 화성시 산안마을 농장은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지난 4월 입식한 병아리 1만7천 마리 가운데 7천500여 마리가 예상보다 빨리 성계로 자라 알을 낳기 시작하면서 지난 14일부터 하루 6천 개씩 계란을 출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5개월간 병아리 사육에만 신경 쓰던 농장 근로자들은 지난해 12월 계란 유통 금지 조치 후 9개월 만에 계란 출하 작업까지 하느라 바쁜 손을 재촉하고 있었다.

산안농장 관계자는 "10월은 돼야 계란을 다시 출하할 수 있을 걸로 예상했는데 9월 중순부터 다시 출하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예전에 산란계 3만7천 마리를 사육하면서 하루 2만2천개의 계란을 생산한 것과 비교하면 소량 생산만 재개된 것이지만 모처럼 농장에는 활기가 넘친다"고 전했다.

농장 측은 내년 여름은 돼야 기존 생산량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안농장 평사 계사 [산안농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당한 살처분 규정의 희생양

산안농장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일본 공동체주의 운동인 '야마기시즘'을 실현하는 농장이다.

이들은 닭도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이라고 보고 동물 복지에 신경 써왔으며, 공장식 축사 대신 평사 계사(바닥에 모래를 깐 평평한 땅에서 사육)에 볏짚, 왕겨, 풀, 톱밥 등을 깔아 놓고 계분이 섞이면 바로 미생물에 의해 건조·발효되는 형태로 산란계를 사육해왔다.

동물복지농장 인증 기준은 1㎡당 9마리지만, 산안농장은 4.4마리로 조사될 정도로 사육 환경이 우수하다.

이런 친환경 농법으로 닭을 키우며 건강한 계란을 생산해 온 이 농장은 지난해 12월 23일 인근 3㎞ 내 한 농장에서 AI가 발생하자 살처분 행정명령과 함께 계란 유통 금지 조치를 받았다.

농장 측은 1984년부터 37년간 단 한 번도 AI가 발생하지 않았고, '3㎞ 내 강제 살처분' 규정은 행정 편의주의로 2018년 12월 새로 생긴 것일 뿐이라며 행정명령을 거부했으나 결국 올해 2월 닭을 살처분했다.

살처분 작업 진행되는 화성 산안농장 (화성=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 사진은 지난 2월 19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의 산란계 농장인 산안농장에서 방역 관계자들이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AI 확산 정국에서 산안농장 사례는 당국의 부당한 살처분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결집했고, 결국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7월 농장의 방역 상황을 반영해 살처분 규정을 차등 적용하는 내용의 '질병관리등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산안농장은 예상대로 '가'등급…갈 길 먼 등급제

농림부가 도입한 질병관리등급제는 방역 여건이 양호하고 차단방역을 철저히 하는 농가는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해당 농가의 시설·장비 구비 여부, 방역관리 수준을 평가해 가·나·다 3개 등급으로 분류하고, 가·나 등급 농가는 예방적 살처분에서 제외할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사육 환경이 우수한 산안농장은 예상대로 가 등급을 받았고, 이제는 작년 말과 같이 3㎞ 내 농가에서 AI가 발생해도 예방적 살처분에서 면제된다.

산안농장 '가' 등급 [산안농장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하지만 농장 측은 이제 막 걸음을 뗀 질병관리등급제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산안농장 관계자는 "등급제는 공장식(케이지식) 계사를 전제로 하고 만든 제도여서 친환경 평사 계사는 등급을 받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라며 "기준에 맞추려면 인건비와 시설비가 많이 들고, 사육 중 불필요한 시간 낭비도 심하다"고 말했다.

한 개 건물 안에 수만 마리의 닭을 가둬놓고 키우는 공장식 계사의 경우 작업자가 방역복을 입고 건물 안에 들어가 많은 닭을 한 번에 관리하고 나온 뒤 소독하면 기준에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넓은 면적에 여러 동으로 나뉜 평사에는 작업자가 한 동에 들어가서 닭을 관리한 뒤 나오면 방역복을 소독하고 다시 방역 절차를 거친 다음 바로 옆에 있는 다른 계사에 들어가야 등급제의 방역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야생 조류가 계사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시설물을 구비하는 것도 공장식은 건물 한 개 동만 관리하면 되지만 넓은 평사는 시설물을 구비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산안농장 관계자는 "지금의 등급제는 공장식 계사가 아닌 친환경 계사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며 "더구나 지금 기준이 앞으로 더 강화되면 우리를 비롯한 친환경 농장들이 과연 상위 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goa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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