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대기업의 노조파괴를 용인할 것인가?..'노조는 절대 안 된다'는 SPC그룹의 민낯 [기고]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2021. 9. 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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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바쁜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할 때, 일찍 열린 빵집만큼 반가운 가게가 또 있을까? 파리바게트, 던킨도너츠, 베스킨라빈스 등 동네에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가게들은 식품전문유통업체 SPC그룹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이다. 식품유통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대형 산업이다. SPC그룹은 식품유통회사 중 2021년 상반기 매출액 기준 1위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기업이다.

식품유통의 핵심은 물류다. 식품이기 때문에 재고를 쌓아두기 어려우며 제대로 된 시간에 온도 등 여러 조건을 맞춰서 배송해야 한다. SPC 소속 화물노동자들은 SPC그룹이 국내 최대 식품 전문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임금은 동결됐다. 반면 배송지는 2배 넘게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노동강도가 증가했다. 매일 새벽 1시에 출근해 12시간씩 일했다. 3-4시간 동안 공장 근처에 대기해야 하지만 대기실과 휴게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공회전하며 차량에서 대기해야 했다. 한 달에 4일 휴가마저 추가로 휴가를 낼 경우 다음 달 휴가가 깎였다. 상·하차는 화물노동자의 업무가 아니지만 회사가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아 매일 700개에 달하는 빵 박스를 싣고 내리는 것은 화물노동자의 몫으로 전가됐다.

화물연대는 SPC와의 합의를 통해 화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했다. 교섭 과정에서 파업을 막기 위해 충분한 양보와 상호 신뢰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SPC는 2020년과 2021년 SPC물류자회사-운송사-화물연대 3자가 서명한 합의안의 시행을 고의로 지연시켰다. 화물연대 조합원에게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손해배상과 계약해지가 떨어졌다. 조합원 가족에게는 협박성 문자와 탈퇴 종용이 이어졌다. 270여명에 달하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 명목의 일방적인 급여 공제에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SPC의 노조탄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갓 구워 나온 SPC의 빵이 매일 아침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다양한 노동자들이 노동한다. 화물노동자, 제빵노동자, 판매노동자 등 SPC그룹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기대어 이윤을 창출했다. 하지만 SPC그룹은 회사를 함께 성장시킨 노동자들을 탄압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노사 합의는 SPC그룹 입장에서는 걸림돌에 불과하다. 이미 2017년 파리바게트지회 결성 당시 복수노조 개입에 이어 합의 파기 등 SPC는 노골적인 노조파괴를 자행했다.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면 회사가 복수노조를 활용하고 노사 합의을 불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전형적인 노조파괴 전략이다. 구시대적이지만 이미 한국사회에 스테레오 타입으로 자리 잡은 노조파괴 수순이기도 하다. 온갖 미래지향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있지만 노조파괴라는 진부한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SPC자본의 민낯이다.

SPC그룹의 구시대적인 노조탄압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위에 갑으로 군림하는 기업이 존재하는 한 선진물류와 산업발전은 불가능하다. 노조파괴 전면 지휘에 나섰던 SPC그룹은 파업을 마무리할 교섭에 대해선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가맹점주들의 고통 호소에도 귀를 닫고, 화물노동자의 정당한 요구도 묵살하고 있다. 어떠한 사회적 책임도 질 생각이 없는 것이다. 갑-을-병의 식품유통 구조 속에서 갑은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을과 병만 피해를 입고 있다. 대기업의 노조파괴라는 ‘불법’ 행위가 경영전략으로 당연시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한국사회, 언제까지 갑들의 피해자 코스프레와 노조혐오를 용인할 것인가?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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