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만성적자' 지방공항, 새로 지을 때가 아니다

김우영 기자 입력 2021. 9. 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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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공항 개발 계획의 청사진이 담긴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이 이달 17일 확정됐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이 계획에는 가덕도 신공항을 비롯해 새만금, 울릉도, 흑산도, 제주도, 대구·경북 등에 10개 공항을 새로 짓거나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계획대로 공항이 모두 건설될 경우 국내 공항은 기존 15개에서 25개로 늘어난다.

공항을 추가로 건설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국내 공항 대부분이 만성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지방공항 14곳 가운데 지난해 흑자를 낸 곳은 제주공항이 유일했다. 나머지 13곳의 연간 적자를 합친 금액은 1000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무안, 여수, 양양, 울산, 포항, 사천, 광주, 군산, 원주공항 등 9곳은 2016년부터 5년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공항들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요가 없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지방공항 14곳 중 8곳의 활주로 이용률은 10%를 넘지 못했다. 비행기가 10번은 이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공항을 지었지만 1번밖에 이용하지 않은 셈이다. 수요 예측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지난해 활주로 이용률이 1%를 넘지 못한 공항도 무안(0.7%), 포항(0.8%), 사천(0.2%), 군산(0.7%), 원주(0.4%) 등 5곳에 달했다 ‘고추 말리는 공항’ ‘유령 공항’ 등의 오명이 탄생한 배경이다.

적자 공항 대부분은 선거때마다 탄생했다. 이른바 ‘한화갑 공항(무안공항)’과 ‘김영삼 공항(양양공항)’이 대표적이다. 무안공항은 김대중 정부 당시 실세로 알려진 한화갑 전 의원이 주도해 탄생했다. 양양공항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공항이다. 무안공항은 개항 전 연간 이용객이 9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2019년에 78만8498명이 이용하는 데 그쳤다. 연간 200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던 양양공항은 같은 기간 4만3519명만 이용했다. 두 공항이 지난 5년간 기록한 누적 순손실은 각각 660억, 607억원. 경제적 타당성을 무시하고 지역개발과 정치논리를 앞세운 결과다.

일본에서도 과거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에 따라 난립한 지방공항들이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해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일본에는 크고 작은 공항이 모두 97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지난해 하루 평균 비행기가 10대도 착륙하지 않은 공항은 60곳에 달했다. 전체 공항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도 절반에 가까운 공항에서 하루 평균 비행기가 10대도 착륙하지 않았다. 오사카공항 등 민간이 운영하는 공항 몇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적자 상태로 일본 국가 부채 증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공항이 과포화 상태인 만큼 앞으로도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KTX와 고속도로 등 사통팔달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적자 공항이 넘쳐나는데, 또 공항을 양산하면 남아있던 수요마저 분산돼 적자를 더 키울 수 있다. 최근 송철호 울산시장이 “울산공항은 더 이상 확장이 불가능하고 지속적으로 경영적자를 보는 것을 감안할 때 미래 경쟁력에 의문이 제기된다”라며 울산공항 존폐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지방공항은 지역민의 이동권 보장과 지역 균형 발전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하며 경제성도 없는 공항을 짓고 방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공항이 적자를 내도 지방정부나 정치인은 책임질 일이 없다.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으로 메꿔진다. 이제는 미국과 유럽처럼 지자체가 함께 공항 건설 예산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남아있는 적자 공항들도 되살릴 방법이 없다면 과감히 통폐합을 고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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