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은행지분, 국유기업에 매각"..'질서 있는 파산'으로 가나
[경향신문]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의 급한 불은 끄게 됐다. 헝다는 자회사 보유 중국 성징은행(盛京銀行) 지분 19.93%를 매각했다고 29일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홍콩증시 상장사인 성징은행이 이날 헝다그룹이 보유 중인 주식 가운데 19.93%를 국유기업인 선양성징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성징은행의 시총은 615.77억 홍콩달러(약 9조4000억원)로, 헝다는 약 1조8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해 채권이자 지급 등 당장 급한 유동성 위기를 넘기게 됐다.
성징금융지주는 랴오닝성의 성도인 선양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가 갖고 있는 국유기업이다. 헝다그룹은 당초 성징금융지주 계열사였던 성징은행을 2016년 인수했지만 5년 만에 원래 주인에게 되팔게 됐다. 헝다그룹 측은 “자사의 유동성 문제가 성징은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국영기업이 대주주가 되면 성징은행 경영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번 매각은 헝다의 디폴트 위기를 막기 위한 첫 자산 매각이라고 전했다. 헝다 측은 자금을 추가확보하기 위해 비핵심 계열사 중 규모가 특히 큰 전기차 자회사인 헝다자동차를 샤오미 등 다른 회사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헝다는 이날 달러 채권 이자 4750만달러(약 559억원)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헝다는 지난 23일 달러 채권 이자 8350만달러(약 993억원)와 위안화 채권 이자 2억3200만위안(약 425억원)을 지급해야 했지만, 두 채권 이자를 모두 제대로 지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예정된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더라도 곧바로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채권 계약서 상 예정일로부터 30일까지는 이자 지급이 이뤄지지 않아도 공식적인 채무불이행으로 간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관심은 헝다 사태에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헝다를 직접 구제하지 않더라도 경제 안정을 위해 최소한 ‘질서 있는 파산’을 유도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헝다가 결국 일부 채권의 공식 디폴트를 선언하고 핵심인 부동산 사업의 전체 또는 일부분을 당국의 통제하에 있는 국유기업에 넘기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로이터통신도 이날 중국 당국이 국유 부동산개발업체들에게 헝다그룹의 자산 일부를 매입하라고 지시했다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일부 업체들은 이미 실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저우시 산하 광저우건설투자그룹은 헝다의 광저우축구장과 주변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를 120억위안에 매입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헝다 사태가 그동안 과열됐던 중국 부동산 시장과 대기업의 과도한 부채 문제를 들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미셸 페티스는 “부동산 개혁은 10년 전에 시작됐어야 한다”면서 “주택 가격이 이미 너무 오른 상태여서 개혁을 하려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저명한 국수주의 논객 리광만도 최근 에세이에서 “에버그란데와 같은 부채에 허덕이는 대기업들은 피비린내 나는 입을 벌리고 중국과 국민들의 부를 삼켜왔다”면서 “당국의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중국 경제와 사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분화구에 세워진 것과 같을 것”이라고 썼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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