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로부터 나를 구하는 법 [오십, 길을 묻다 (52)]

2021. 9. 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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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30여년 전, 대학에 들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광주항쟁 이야기였다. 전혀 알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고, 전혀 보지 못한 사진을 교정 전시에서 만났다. 그때까지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동시에 언론을 더 이상 믿지 못했다.

2016년 10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서 한 지지자가 클린턴을 좀비로 묘사한 가면을 쓰고 있다. / AFP/경향자료


광주 이야기가 알려지는 데는 긴 시간이 요구됐다. 1988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청문회가 열렸다.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 화가 났던 건 명백한 사실을 왜곡하는 ‘가짜뉴스’들이었다.

가짜뉴스의 역사는 물론 오래될 거다. 그런데 가짜뉴스가 범람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1세기 현재는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퍼지기 좋은 환경이다. 그 과정은 대개 이렇게 진행된다.

누군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 일종의 뉴스를 올린다. 정치가 목적인지 돈이 목적인지는 불분명하다. 많은 댓글이 달리고, 다른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져나간다. 곧 소셜미디어를 인용한 기사가 포털 뉴스에 경쟁적으로 올라오고, 이 기사는 카카오톡 등을 통해 사방팔방으로 전파된다. 그러면 그 진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 뉴스를 아느냐고 묻는다. 누군가는 믿고 누군가는 믿지 않는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가 2018년 내놓은 〈포스트트루스〉에 따르면, 누군가는 믿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믿기 싫어한다.

‘탈진실’이 피어나는 근원

가짜뉴스는 이른바 ‘포스트트루스(post-truth·탈진실)’ 시대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201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탈진실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2016년은 영국에서 브렉시트 투표가 치러지고,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해였다. 대서양 이편과 저편은 정치적으로 매우 소란스러웠다. 매킨타이어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탈진실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현실을 왜곡해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고문인 켈리앤 콘웨이는 백악관 공보비서가 취임식 관중 규모를 부풀린 것을 ‘대안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이면 사실이지 대안적 사실은 뭔가. 대안적 사실이란 말은 정치적 맥락에 따라 사실쯤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학부인주의는 탈진실이 갖는 위험성을 드러낸다. 담배의 유해성에서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과학부인주의의 전략은 비슷했다. 기업으로부터 지원받은 반대 연구들이 앞선 과학적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회의주의를 퍼뜨렸다.

이에 따라 언론은 객관성을 갖춘다는 이유로 양쪽 주장을 함께 전달하고, 그 결과 대중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탈진실이 피어나는 근원은 인간의 불완전성이다. 매킨타이어는 인간의 ‘인지편향’을 주목한다. 인간은 본래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고 싶어한다. 사실이라고 믿던 일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원래의 믿음을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 믿음체계를 조정하는 데 꼭 합리적 방법만을 쓰진 않는다.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신념과 행동 사이의 조화가 무너지면 심리적 불안을 겪는다. 이 불안 해소를 위해 인간은 정당화 기제, 다시 말해 핑계를 만들어낸다. 이 정당화는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강화되고, 주위 사람들의 믿음과 조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확증편향 역시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확증편향이란 새로운 사실을 접했을 때 자신이 갖고 있던 원래의 생각 또는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실험자들은 규칙을 파악할 수 있게 여러 번 숫자 배열을 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원래 가설을 확증할 수 있는 숫자 배열을 제시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

두리반


세상공부, 멈추지 말아야

문제는 오늘날 이런 인지편향이 놓인 자리다. 과거에는 다른 공동체 구성원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교정될 수 있던 반면, 각종 미디어가 범람하는 현재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소셜미디어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뉴스를 공유하기 더욱 쉽게 만든다.

매킨타이어는 흥미로운 사회조사를 제시한다. 미국 성인 중 62%가 소셜 미디어에서, 그 가운데 71%가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확인한다. 그 결과가 ‘뉴스 사일로 현상’이다. 사일로란 곡식이나 사료를 저장하는 창고다. 외부와 담을 쌓고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계속 뉴스를 공유하게 되면 다른 의견을 접할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편견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조건에서는 가짜뉴스가 딱 퍼지기 쉽다. 문제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는 특히 심각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부부에 대한 가짜뉴스를 듣고 분개한 한 남자가 피자가게에 총기를 난사한 사건은 유명했다. 대선 직전 석달 동안 페이스북에서는 가장 인기 많은 가짜뉴스 20개가 가장 인기 많은 진짜 뉴스 20개보다 더 많이 공유됐다.

상황이 이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누군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거르고, 이런 탈진실의 시대에 어떻게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오십이 넘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결 분명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 세상에 마주하는 옳은 판단이 무엇인지를 갈수록 알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먼저 걸리는 건 인지편향이다. 믿음이 현실과 충돌하면 믿음을 수정하는 게 맞다. 그런데 오십년 동안 켜켜이 쌓인 믿음을 수정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크게 줄어든다.

젊은 시절 오십이 넘으면 세상공부가 아니라 마음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십에 막상 도달해보니 세상 공부가 여전히 중요하다.

이 놀라운 과학기술혁명 시대에 갈수록 진실이 희미해진다니, 나로선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탈진실이든 가짜뉴스든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로 존재한다. 결국 아무리 나이가 들어간다 해도 새로운 사회현상은 계속 배워야 한다. 마음공부와 세상공부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새로운 깨달음이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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