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기 칼럼]노동 유연화의 하이로드

김상용 기자 2021. 9.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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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노동 유연성 확대는 선택 아닌 필수
새 기술 교육 늘려 직무역량 높이고
능력·성과 따라 공정하게 보상하면
법 개정 없이 노동 경직성 크게 낮춰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
[서울경제]

노동 유연화는 오랫동안 세계 주요 국가 공통의 개혁 과제였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김영삼 정부 이후 지금까지 노동시장의 경직성 타파는 항상 국가적 개혁 과제의 상단을 차지해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노동 개혁이 뜨거운 쟁점이다. 국민의힘 경선 토론에서는 노조와 일전을 불사하고라도 해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강경론과 그게 가능하겠냐는 현실론이 격돌하는 모양새다. 반면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는 대선 1호 공약으로 신노동법을 내걸고 일하는 모든 사람을 노동법의 보호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노동정책은 아직 분명치 않지만 다음 정부는 아마도 이 양극단의 주장을 절충하는 타협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해법 중 하나가 노동 유연화의 하이로드(high-road) 전략을 중심으로 노사정이 타협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전개되는 세계적인 산업 대전환의 현실을 보면 노동 유연성의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정치권의 공방이 노동법 개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산업 대전환의 시대에 필요한 노동 유연화는 법 개정만으로 될 일도 아니고 그것이 꼭 최선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위기 이후의 경제적 변화는 지난 30년간의 금융 세계화 시대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노동 유연화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 더 효과적인 유연화 전략은 대량 해고가 아니라 노사 협력을 다지고 교육·훈련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다음 정부도 해고 유연화를 위한 법 개정에 힘을 쏟기보다는 직업 변동과 직무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대대적인 교육·훈련 투자와 고용 서비스 확대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노동 유연성이 필요한 이유는 기업이 시장 수요의 변동과 기술 진보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탄소 중립과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른 산업의 전환은 약간의 수익 구조 변화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명운을 걸고 파괴적 혁신에 나서여 할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다. 제조업의 좋은 일자리 12% 정도를 책임지고 있는 자동차 산업이 좋은 예다. 현대자동차만 하더라도 상용차와 고급 승용차에서 내연기관차 개발이나 생산을 아예 중단하고 전기와 수소전지를 장착한 친환경차만 생산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완성차 메이커가 아니라 각종 운송 서비스를 망라하는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전환의 계곡을 빠르고 슬기롭게 건너는 최선의 선택이 대량의 정리 해고는 아니다. 새 기술에 대한 대대적인 교육·훈련으로 기존 인력의 직무 역량을 높이고 이들을 다양한 직무에 투입할 수 있게 만드는 하이로드 전략이 더 낫다. 그동안 성장을 이끌어왔던 고숙련 전문 인력을 한물간 퇴물 취급하는 순간 이들은 혁신에 맞서는 저항군으로 돌변할 것이다. 사회 안전망 강화로 될 일이 아니다. 독일의 노사정이 디지털 전환과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협의하며 공동 행동에 나서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노동법 개정 없이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임금과 인사 제도의 유연화다. 신기술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직이 바뀌고, 성과급과 스톡옵션 등 주식을 통한 보상으로 유능한 인재를 관리한다. 근로자들도 직장을 옮겨 다니며 경력을 관리하고 연봉을 높이는 데 익숙하다. 보상 체계를 융통성 있게 바꾸기만 해도 노동 경직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이 고령자의 퇴직을 유도하는 방법은 해고가 아니라 연봉 조정이다. 디지털 기술 환경에 맞게 근로기준법을 개정한다면 해고 조항보다 근로자 정의나 근로시간에 대한 규제부터 완화하는 편이 낫다. 다른 근로 조건들도 직종과 업무 특성, 고용 지위에 따라 노사가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길을 넓혀주는 방식으로 근로기준법 적용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전개될 대전환은 전대미문의 변화로 성공 사례도 없다. 기업이나 국가가 나름대로 최선의 해법을 찾는 수밖에 없다. 다만 분열과 갈등은 최악의 선택이고 전환의 계곡을 죽음의 계곡으로 만들 것이다.

김상용 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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