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 성공 신화, 그 이면엔 '개미지옥'이 있다

장병호 2021. 9.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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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온라인 화제된 논문, 책으로 정식 출간
매매방에서 만난 개인투자자 심층 분석
투자 빠져드는 사회구조적 요인 조명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주식투자로 성공한 부자아빠 무작정 따라하기’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 최근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경제경영서들이다. 주식 투자를 통한 성공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책 제목에 고스란이 반영돼 있다. 그런데 정말 주식 투자는 성공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민음사)는 이러한 믿음이 허상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책이다. 정보력 등에서 기관과 외국인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주식투자는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 현실이다. 책은 그럼에도 ‘개미지옥’처럼 투자를 포기하기 힘든 구조적인 요인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현재 서울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김수현(27)씨다. 2019년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은 ‘개인투자자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를 하는가?-서울 매매방 개인전업투자자의 꿈과 금융시장 간파’라는 논문으로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돼 정식 책 출간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30년 경력의 직장인 개인투자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투자의 중요성을 믿으며 자라났다. 그러나 인류학을 전공하면서 난생 처음 자신과 다른 생각과 맞닥뜨리게 됐다. “개미는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교수의 이야기에 개인투자자의 성공 사례를 증명하고자 개인전업투자자 사무실인 매매방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매매방에서 마주한 현실은 충격적이었다. 저자가 만난 매매방 운영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매매방에 입실한 200여 명 중 절대다수가 돈을 잃고 퇴실하는 것을 지켜봤다”고 털어놓았다. 충격에 빠진 저자는 진실을 알기 위해 직접 매매방에 자리를 얻었고, 그곳에서 개인투자자들을 만나 가벼운 대화를 시작으로 심층 면접까지 나섰다. 책 제목처럼 이른바 ‘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이 실패가 뻔히 예상됨에도 투자에 계속 뛰어드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개인투자자가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초심자만이 누릴 수 있는 달콤한 ‘돈 맛’, ‘다 잘될 거야’라는 과신의 편향과 ‘답은 정해져 있다’는 확증의 편향, 그리고 실패가 눈앞에 보임에도 울며 ‘물타기’를 하며 ‘존버’에 빠지는 과정이다. 인간의 불안한 감정과 심리가 개인투자자로 하여금 투자를 포기할 수 없는 ‘개미지옥’에 빠져들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매매방에 모인 이들 대다수가 40~50대 남성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대부분 높은 학벌에 과거 좋은 직장에 다녔던, 그러나 지금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락한 이들이다. 우리사주제도 도입, 그리고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주식 투자를 통한 성공의 꿈을 갖게 됐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저자는 주식 투자 성공 신화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찬찬히 제시해 보인다.

책 말미에는 최근 떠오르고 있는 20~30대 청년투자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40~50대 개인투자자들은 ‘단타’를 통한 성공을 추구하는 반면, 청년투자자들은 ‘존버’를 더욱 추구하는 현실을 주목한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자본시장이 우상향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존버’를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청년투자자를 ‘동학개미’라고 부르는 프레임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청년투자자들에게 맞서 싸워 이길 적군과 외세는 없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지만, 저자는 ‘주식 투자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대신 주식 투자가 항상 성공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은 인식하고 주식 투자를 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논문을 바탕으로 한 책이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흥미로운 르포를 보는 듯하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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