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가 될 수는 없다[광화문]

양영권 사회부장 입력 2021. 9.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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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많은 고향동네 이웃집 형님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접한 건 이번 추석 연휴 고향에 내려갔을 때다. 노부모와 형제들만 조용히 서울로 올라가 상을 치렀다는 걸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해 공장에 취업한 분이었다. 십 몇년 전 가게 하나를 인수해 운영하며 사장님 소리를 들었지만 결국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 소년공 시절 극악한 노동환경도 견뎠고 IMF, 글로벌금융위기도 이겨냈다. 하지만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불황에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보도는 많이 접했지만 내 주변에서 벌어지니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새삼 와닿았다.

자영업자들이 침몰하고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탈락한 이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국내 자영업 경쟁 환경은 그러잖아도 열악하다. 코로나19는 그들을 극한으로 내몰았다. 여의도 국회 둔치 주차장에서 새벽 시간에 차량 집회를 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죽음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노조가 실력행사를 할 때 흔히 내세우는 '생존권 쟁취'라는 상투적 표현과는 차원이 달랐다. 잇따른 죽음은 그 외침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시시각각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은 전달되고 있다. 이달에만 해도 머니투데이는 매출장부에 '0'이 찍힌 날이 연속인 서울 성동구의 매운탕집 주인의 이야기를 전했다. 원룸 보증금으로 직원들에게 마지막 월급을 주고 떠난 서울 마포구의 주점 사장님에 대한 추모 공간 상황도 보도했다.

이처럼 충분히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고, 구할 시간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구출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어리고 귀한 생명들을 실은 세월호가, 우리가 비통한 마음으로 TV를 통해 시시각각 지켜보는 사이 서서히 침몰해 가는 과정과도 같다.

절규는 절박하지만 구조 의지는 절박하지 않다. 코로나19 방역조치로 손실이 발생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보상근거를 신설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코로나 손실보상법)이 긴 논의 끝에 다음달에야 시행하지만 코로나 손실과 무관하게 전국민 88%에게 돌아가는 11조원 규모의 5차 재난지원금은 추석을 앞두고 속전속결 지급됐다.

그 재난지원금으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소득 상위 12%에 들어 1인당 25만원씩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재난지원금이 확실히 대면 소비활동을 늘리는 효과를 발휘했는지 지원금 지급 이전 1000명대이던 코로나19 확진자는 이후 3000명대로 급증했다. 사용처가 제한돼 있는 재난지원금을 불법적으로 현금화('깡')해 방역수칙을 어기고 70m 줄을 서 가며 대형 아울렛 유명브랜드 매장을 찾은 사례도 목격됐다. 누군가 소고기를 사 먹고 나이키 신발을 사고 갤럭시워치를 살 돈으로 실제로 방역조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에 대한 직접 지원에 서둘러 나섰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이 여럿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K방역'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던 것은 손해를 감수하고 방역에 협조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공이 크다. 그들이 이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게임 참여자처럼 죽어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런 게임판이어도 안되고, 우리가 그런 죽음의 게임을 양주잔을 기울이며 관전하는 VIP들이 돼서도 안된다.

정부는 방역을 완화하는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엄연히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소비 환경이 코로나19 이전만큼 충분히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더 집중적이고 직접적인 지원에 속도감 있게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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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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